다시금 한국경제의 초점이 "수출"에 쏠리고 있다.

실물경기의 급속한 위축과 금융시장 경색 등 "제2의 환란(換亂)" 일보직전에 처해 있는 한국 경제에 "믿을 것은 역시 무역흑자뿐"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이 1997년 시작된 외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데는 98년중 3백80억달러를 넘어섰던 무역 흑자가 큰 힘이 됐다.

한국 경제가 이런저런 고비를 맞아 흔들릴 때마다 언제나 "무게 중심" 역할을 한 것은 수출산업이었다.

다시 "한국 경제호"에 위기론이 몰려들고 있다.

올 상반기들어 모습을 드러냈던 경기하락의 어둔 그림자는 하반기들면서 눈앞의 현실로 닥쳐왔다.

내수는 급감했고 기업들의 투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금융 위기와 실물 위기가 겹치면서 기업 자금줄도 꽉 막혀 버렸다.

증권시장 역시 활력을 잃었다.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들의 메아리없는 외침만 날로 높아지고 있다.

다수의 수출기업들은 이런 한계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을 다하고 있다.

내수 둔화에 따른 판매 감소와 자금난을 수출시장 개척으로 해결해내고 있다.

덕분에 올해 한국의 수출은 사상 최대인 1천7백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자원부는 11월말까지의 수출 실적이 1천5백7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는 만큼 12월말까지는 1천7백억달러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11월까지의 실적만으로도 지난해 전체 실적 1천4백37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올해 1천7백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면 이는 당초 목표치보다 1백억달러 가량 많은 셈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과 치솟는 국제유가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궈낸 성과다.

무역수지에서는 1백20억달러 가량의 흑자가 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들어 수입이 크게 늘면서 흑자 폭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긴 했지만 현재 추세로 볼 때 그 정도의 흑자는 무난해 보인다.

지난해 배럴당 17달러 안팎이었던 국제 유가 수준이 올해 30달러까지 치솟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흑자는 지난해 이상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수출 호조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낙관하긴 어렵다.

적잖은 걸림돌이 갈길 바쁜 "수출 한국호"의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민간연구소는 물론 국책 연구기관들도 올해의 수출 호조세가 내년 이후로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기 둔화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 둔화는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PC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날로 강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수입규제 움직임도 수출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 뿐 아니라 인도 중국 브라질 등 후발 개도국들도 수입 규제의 빗장을 부쩍 걸어닫는 추세다.

선박 수주량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선 조선산업의 경우 EU 조선업계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철강제품 역시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수입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내년에도 배럴당 30달러를 웃돌 것으로 보이는 고유가 체제도 수출업계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고유가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의 동반 상승이 불가피하고 이는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게 뻔하다.

PC(개인용 컴퓨터) 수요의 감소와 이로 인한 반도체 가격 하락, 일본 엔화의 약세 조짐 등도 수출기업들에 발목을 걸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1월1일 한국종합전시장(COEX)에서 제5차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현재의 경제불안 조짐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역흑자 유지와 외국인 투자 확대"라며 "다시 민.관 총력 수출체제를 갖춰 나갈 것"을 주문했다.

김 대통령은 또 "남.북한간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한반도 경제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매년 무역흑자 1백억달러 체제를 달성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선진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하자"고 역설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관차로서 수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새롭게 뛸 것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수출 확대를 통해 신규 고용 창출 및 국민소득 증가를 이뤄 왔다.

평시에는 경제 성장을 한단계 끌어올리고 위기때는 난국을 앞서 헤쳐가는 역할을 수출이 맡아 왔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수출이 10% 늘어나면 GNP(국민총생산)는 77억달러 증가하고 경제성장률도 1.8% 높아진다.

또 41만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실업률은 2%포인트 낮아졌다.

한국의 수출업계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당장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많다.

예전과 같은 물량 위주의 수출정책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앞서가는 선진국의 견제와 숨가쁘게 뒤쫓아오는 후발 개도국의 추격이라는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게 "수출 한국호"의 현재 좌표다.

안정적인 무역흑자 기조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수출정책 전반에 대한 일대 수술이 필요하다.

반도체 조선 등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편중적인 수출구조에서 탈피하고 미국 EU 등에 몰려있는 수출시장도 다변화해야 한다.

일본과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대일 적자 축소는 단순히 일본과의 무역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절실한 숙제다.

이같은 변신을 위해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21세기 새로운 세기가 열렸고 한반도 경제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재도약을 꾀해야 할 때다.

그 도약의 키워드는 여전히 수출이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