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하이텍의 김석한 사장은 별명이 ''면도칼''이다.

온화한 인상을 풍기는 그가 면도칼이란 닉네임을 갖게 된 건 신용을 끊고 맺음이 확실하기 때문.

그는 한국과 중국에 모두 6개의 인조모피 공장을 가진 세계 최대의 인조모피업체 사장이지만 은행돈을 단 한푼도 쓰지 않는다.

더욱이 그는 당좌거래도 일절 하지 않는다.

어음도 끊어주지 않는다.

무차입(無借入)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는 소재업체로부터 납품받으면 그 자리에서 현금을 준다.

기업은행 신한은행 등에 계좌를 터놨지만 예금만 할 따름이다.

11·3 퇴출조치에 이은 대우자동차 부도 등으로 ''제2의 IMF''가 오고 있다고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인성하이텍은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1천6백억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금년 당기순이익도 1백3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인성하이텍의 김 사장 이외에도 도림전기의 이성우 사장,미래아이엔티의 김정필 사장 등 여러 중소기업자들이 한번 부도경험을 겪은 뒤부터 아예 차입경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업계에 다시 불황의 찬바람이 몰아치자 이들처럼 무차입 경영을 고집하거나 검소한 경영을 실천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돋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플라스틱제품 생산업체인 지주의 이국노 사장은 10년 된 짙은 청색의 양복을 그냥 입고 다닌다.

이 사장은 양복바지 아랫단이 닳아 떨어지자 짜깁기를 해 입고 있다.

이런 절약정신으로 돈을 모아 최근 경기 김포에 사이몬이란 회사를 설립했다.

대지 1만평에 건평 3천5백평의 대규모 플라스틱제품 공장을 세웠다.

경기 시흥에서 고성능 히터를 만드는 우경산업의 이경진 사장은 자신이 직접 회사 화장실 청소를 한다.

이 회사는 청소인력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어 임직원들이 열심히 쓸고 닦는다.

경남 사천에서 초고압 강철파이프를 생산하는 세우에는 사장실이 없다.

경비도 아끼고 시간도 절약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박해술 사장은 직접 사무실과 공장을 돌면서 결재한다.

세우는 또 회의실에 의자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앉아서 회의를 하면 시간을 끌기 때문에 서서 회의를 하도록 해 놨다.

소피아의 주정균 사장도 사장실을 두지 않고 서서 회의한다.

건설중장비 제조업체인 부철퍼링스 정영호 사장의 부인 홍승옥씨는 직접 대형 트럭을 몰고 다닌다.

홍씨는 철물시장에 가서 강철자재들을 구매해 트럭에 싣고 회사로 돌아온다.

광주 하남공단에 있는 세협테크닉스의 박정수 사장은 일이 밀리면 회사 수위실에서 잠을 자곤 한다.

출·퇴근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것.

이처럼 절약하는 태도로 경영을 하는 중소기업들은 불경기에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한다.

무차입 경영이나 검소한 경영으로 축적된 힘은 불황 한파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원동력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이치구 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