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기는 금융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최우선 과제는 금융기관들이 건전성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 온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의 말이다.

여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IMF 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산업위기로 금융부문마저 신뢰성을 상실할 정도로 흔들렸다는 점이다.

72년 사채동결 조치, 80년대 중화학투자조정 등 과거 우리경제 위기는 대부분 산업부실에서 비롯됐다.

일단 부실기업이 정리되면 그런대로 경제가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97년 위기는 산업부실과 금융부실이 복합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줬다.

정부는 금융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1백1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서도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지 못해 다시 40조원의 자금조성을 추진중이다.

아직 국회동의를 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지난 3일 기업퇴출로 공적자금이 더 필요해졌다.

진로가 확실치 않은 현대건설 대우자동차 쌍용양회의 처리방향에 따라서 은행권 부실이 훨씬 더 커져 공적자금 추가소요액을 40조원에서 10조원 정도 더 늘려야 할 판이다.

그만큼 은행들은 부실에 허덕이고 있고 그로인해 자금지원기능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웬만한 기업에는 대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초우량 기업 외에는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금융은 빈사상태에 빠졌다.

기능복원이 시급하다.

정부는 공적자금 추가투입을 앞두고 금융지주회사라는 새로운 장치를 도입하려고 한다.

부실한 은행들을 청산하지 않고 정부가 주인인 지주회사라는 우산 아래 묶어 구조조정을 해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인력과 점포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은채 저마다 우산속에 안주하려 했다간 또다른 대형 부실은행을 낳을 수 있다.

지주회사가 은행이 퇴출될 경우 예상되는 파장을 줄이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든 대피소여서는 곤란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동시에 은행들은 엄격한 심사분석 능력을 갖춰 부실을 줄이고 업무 영역을 특화해 수익기반을 다변화시켜야 한다.

정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식 경영으로는 더이상 생존할 수 없는게 냉엄한 현실이다.

또 공적자금을 받기 전 철저한 자구노력을 통해 더이상 부실의 늪에 허덕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는 원칙과 룰을 정하고 그 감시자가 되는데 그쳐야 한다"며 "전면에 나서 시장을 지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가진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해도 이젠 ''은행이 스스로 경영의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지도록 자율성을 돌려줘야 한다''(강철규 시립대교수)는 것이다.

빌려준 돈이 잘 쓰이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춰 기업구조조정이 일상적인 일이 될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금융기관의 몫이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