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벤처, 국제화에 불을 댕겨라"

벤처산업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에 이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주가조작시비로 벤처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영 다르다.

비지니스모델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벤처는 운영자금조차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박"의 꿈에서 "쪽박"의 현실로 몰린 투자자들은 급속히 등을 돌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꽃도 한번 피워 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의 벤처산업, 그 돌파구를 국제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한 채 한탕만을 겨냥한 "묻지마 투자" 행태와 이를 쫓은 일부 벤처의 모럴 헤럴드가 지금의 위기를 불렀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제라도 한국벤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계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는 벤처특유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국제화만이 살길이다 =한국 벤처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이다.

코스닥시장이 후끈 달아 올랐던 지난해 대부분 벤처기업들은 해외진출을 외면했다.

"국내 시장이 좋은데 굳이 해외로까지 나가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이런 소극적인 생각은 벤처산업의 체질을 약화시켰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보듯 벤처산업은 스타를 키워내고 그는 다시 새로운 벤처를 이끄는 철저한 "스타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MS(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세계적인 기업은 한결같이 CEO(최고경영자) 사관학교 역할을 맡는다.

미국의 나스닥시장과 벤처산업을 이끄는 원동력도 여기서 나온다.

한국에는 이런 기업들이 거의 없다.

고만고만한 기업들이 제한된 국내시장의 "파이"를 나눠 먹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그 결과는 "무늬만" 벤처인 사이비 벤처의 속출로 이어졌다.

"한국의 벤처역사는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아 MS출신 경영인 같은 스타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벤처가 국내에서만 안주하게 되면 더 이상 벤처가 아니다. 벤처란 글로벌 스탠더드로 무장한 기업을 의미한다. 벤처의 생명력은 바로 도전의식이다.
하루빨리 "국내용"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시장으로 뛸 때 비로소 벤처산업에도 미래가 보인다"는 메디슨 이민화 회장의 말이 새롭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마인드도 바꿔야 한다 ="상당수 벤처기업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업종이 인터넷 정보통신이어서 벤처라고 불리지 경영측면에서 접근하면 예전의 중소기업과 크게 다를바 없는 기업들이 많다"(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이번 기회에 벤처기업의 마인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계 초일류 기업과 정면 승부를 하기 위해서는 경영방식도 "일류"여야 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성과위주의 보상시스템을 마련하고 과감한 아웃소싱(외주)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첨단경영방식을 도입해 조직원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조언한다.

이는 한국벤처의 국제화와도 관련이 깊다.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최고위원은 "세계 본류인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들이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며 "그들과 경쟁을 하려면 적어도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네트워크가 힘이다 =벤처기업의 힘은 바로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전문인력이 달리는 벤처기업의 취약성도 네트워크만 제대로 구축되면 보완이 가능하다.

벤처기업들은 기술개발과 마케팅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분야의 경우 하루빨리 실리콘 밸리와 인도에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술이 세계시장에서 차세대 기술로 떠오르고 있고 틈새 기술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재치, 인도의 풍부한 인력에 기술의 새로운 흐름 등을 합치면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놔도 호평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조송만 누리텔레콤 사장은 "가장 어려운 마케팅도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네트워크만 구축되면 판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