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시대에 증권거래소는 기술경쟁력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1백99년 전통의 런던증권거래소(LSE) 쇠락이 남긴 교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시장규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패망의 원인"이라며 한때 세계 최강·최대를 자랑하던 런던증시의 쇠락과정과 교훈을 상세히 보도했다.

LSE는 지금 미국 나스닥과 스웨덴 기업들의 인수합병타깃이 되는 등 과거의 영화를 잃어가고 있다.

◆교훈 1=''최초''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LSE는 지난 85년 유럽 최초의 전자 주식거래시장을 출범시켰다.

시장 이름은 ''SEAQ인터내셔널''.전화 한 통화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었다.

LSE가 전화없이 컴퓨터만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개발에 착수했던 89년 피터 롤린스가 새 CEO로 취임했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비용삭감이었다.

롤린스는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주식거래의 완전 컴퓨터화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외부 용역업체인 앤더슨컨설팅에 기술프로젝트를 맡겼다.

기술문제에 관한 한 모든 결정권이 외부기업인 앤더슨에 넘어간 것이다.

당시 LSE는 ''토러스''라는 전자청산시스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었다.

당초 8백만파운드로 예상됐던 개발비가 10배로 불어나자 롤린스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토러스사업도 중단됐다.

토러스 중단은 LSE가 기술주도권을 놓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토러스 실패로 신뢰를 잃은 LSE는 ''기술''이란 이슈에서 손을 떼고 시장규제쪽으로 전략의 초점을 옮겼다.

기술주도권은 외부 기업인 앤더슨에 일임한 채.

◆교훈 2=경쟁자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

93년만해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증시를 운영하는 도이체뵈르제는 기술분야에서 별 볼일 없었다.

그러나 LSE가 토러스프로젝트를 포기한 바로 다음날 도이체뵈르제에는 매킨지 출신의 스위스인 CEO 시페르트가 취임했다.

그의 최우선 목표는 ''전자거래시스템의 개발''이었다.

도이체뵈르제 역시 앤더슨컨설팅에 개발작업을 의뢰했다.

그러나 LSE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도이체뵈르제의 기존 기술에 기초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이체뵈르제 프로그래머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작업을 진행시킨다는 조건을 앤더슨측에 제시한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게 현재 유럽 최강의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제트라''다.

이 시스템 덕분에 도이체뵈르제는 런던국제금융 선물 및 옵션거래소(Liffe)가 장악했던 독일정부채권 선물시장의 70%를 뺏어왔다.

◆교훈 3=공격적인 투자를 하라.

도이체뵈르제는 유럽거래소 중 가장 공격적이다.

도이체뵈르제는 연간 매출의 20%(2억2천5백만마르크)를 기술에 투자한다.

제트라 1세대 개발에는 1억5천만마르크를 투자하고도 매년 2천만마르크를 쏟아부어가며 시스템을 보완한다.

시스템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이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LSE는 투자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진행 중이던 주식거래전산화작업을 중단했다.

◆교훈 4=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렵다.

LSE는 지난주 범유럽시장을 독자적으로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LSE는 여전히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10년 전 독주하던 무대가 이제는 경쟁력 있는 선수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