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의 화섬원료 생산업체인 고합의 ''생사''여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고합은 지난 98년말 이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으로부터 두차례에 걸친 채무조정을 받았지만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번에 ''퇴출''여부가 판가름나게 돼있다.

채권은행들은 일단 고합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여신 50억원 이상의 채권은행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75.6%(여신비율 대비)가 ''워크아웃 지속''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빛 산업 외환은행과 농협등 여신이 많은 대형은행들이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은행 관계자는 "고합은 동아건설처럼 신규자금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아 구태여 법정관리 신청을 할 필요가 없다"며 "현재 1천억원 이상의 현금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고 울산 2공장 매각을 비롯한 자구계획도 이행가능성이 높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채권은행들의 이같은 의견을 따를 경우 고합은 조건부(향후 신규자금 지원불가)로 퇴출판정을 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게 금융계와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고합이 퇴출리스트에서 빠질 것으로 확신하기엔 이르다.

우선 화섬 경기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데다 고합을 보는 시장투자자들의 시각도 결코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또 금감원이 고합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워크아웃 기업들과 형평성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도 고합 처리의 막판 변수로 꼽힌다.

◆현황=고합측은 올 상반기 3백14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지만 부실을 상각하지 않았다면 8백8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자산매각등으로 부채가 많이 줄어들었고 13개 계열사를 고합 단일회사로 합병하는등 적극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펼쳐온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3천4백억원의 유가증권 처분을 비롯 마그네틱테이프 제조업체인 EMTEC사를 2억6천만달러에 매각했고 해외지사도 철수시켰다.

3천5백명의 인원도 1천9백명으로 줄였다.

이에따라 2차 워크아웃 기간(99년12월∼2000년6월)중 자구실적은 목표치의 86%(1천1백75억원)를 달성했다.

회사측은 오는 2002년말까지 원금상환이 유예돼 있고 이자는 연 5∼8%의 우대금리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현상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전망=고합의 퇴출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울산 제2공장의 매각 가능성에 달려있다.

고합은 제2공장내 필름 PTA공장등의 해외 분할매각을 통해 부채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 97년 말 준공된 이 공장은 최신설비에 생산성도 좋은 편이어서 높은 가격을 기대하고 있다.

회사측이 평가하는 공장가치는 총 1조5천억원 수준.

회사 관계자는 "분할매각이 성사될 경우 고합측 여신이 1조5천억∼1조8천억원대로 낮아져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합은 또 원사공장을 중국과 동남아지역으로 이전함으로써 현재 전체 30%에 달하는 화섬부문의 사업비중을 점차적으로 줄이고 화섬원료인 PTA와 PX 및 PET 칩 등 유화제품을 주력화하는 등 사업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결국 고합의 운명은 정부당국이나 시장이 이같은 자구계획을 얼마나 믿어주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