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핵심역량 파괴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투시만 교수는 혁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혁신이란 자신의 ''경쟁력''을 스스로 깰 수 있는 능력이란 얘기다.

요즘 외신에 넘쳐나는 ''제록스''의 실패스토리는 이같은 혁신의 정의가 21세기 경영환경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혁신''으로 성공한 제록스가 ''혁신''때문에 망한 ''역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에 자리잡은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는 혁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자유로운 창의력''에 매몰돼 ''기술을 위한 기술''에 갇혀버렸다.

PC의 기초기술을 개발했지만 PC를 만들어 판 것은 애플컴퓨터였다.

인터넷 네트워크구조를 개발한 것도 제록스였지만,정작 제록스는 인터넷혁명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복사기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고성능 인쇄기와 프린터사업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신기술과 구기술사이에서 미아가 된 채 ''혁신의 딜레마''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저서 ''혁신의 딜레마''에서 ''파괴적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파괴적 기술이란 ''현재의 경쟁력 기반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기술''이다.

대기업들은 이런 신기술 개발보다는 기존의 핵심사업에 몰두한다.

그동안 벤처기업들의 파괴적 기술은 틈새시장을 비집고 들어가 기존 대기업들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스탠더드로 자리잡는다.

대기업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즈음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리게 된다.

바로 제록스처럼.문제는 이런 신기술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력의 수명''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뜻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위기도 바로 혁신의 딜레마에서 찾을수 있다.

지난 30여년간의 압축성장형 기업경영 모델은 분명 큰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는데 그 경쟁력에 갇혀 한국기업들은 변화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핵심 경쟁력(core competence)이란 언제라도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으로 돌변할 수 있다"(미시간대 앨런 아푸아 교수)

그래서 제록스의 실패스토리는 21세기 기업들 모두의 얘기가 될 수 있다.

노혜령 국제부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