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불투명한데 기준을 어디에 놓고 사업계획을 짜야할지 막막합니다"

국내 기업중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삼성 계열사 기획담당 임원의 하소연은 실물경제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요즈음 삼성 분위기는 확실히 몇 달 전과 다르다.

초조까지는 아니지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도체값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데다 주가도 동반하락 행진을 하고있다.

얼마전까진 ''삼성독주''라는 평가를 받으며 내심 싫지않은 표정이었지만 요즘은 영 딴판이다.

''호사다마''일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 내부적으로 ''위기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던 것이 실제 위기감으로 바뀐 것이다.

삼성의 한 직원은 현재 경영환경을 ''훈련''이 ''실전''으로 바뀐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위기 상황은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 데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구조조정본부는 계열사별로 현재 상황이 그런대로 이어지는 경우와 최악의 경제상황을 염두에 두고 2가지의 사업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거시지표도 2가지를 줬다.

이를테면 경제가 그런대로 굴러갈 경우 금리는 10%(3년만기 회사채)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면 12%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평균 유가도 마찬가지다.

서부 텍사스 중질유 기준으로 비관적으로는 30달러로,정상으로는 25달러로 잡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을 세우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안개속에선 서행하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식이라고 한 실무자는 털어놓는다.

금년이야 사상 최대 실적을 내세우며 웬만한 어려움에도 버틸 수 있겠지만 내년에는 무엇으로 견딜지 걱정이 앞선다는게 그들의 반응이다.

업종별로 하나같이 세계최강 아니면 국내최강을 자랑하는 삼성 계열사 중에서 내년에도 금년만큼 장사를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는 회사는 단 한군데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들은 "삼성이 그 정도인데 우리 상황은 묻지도 말라"고 잘라 말한다.

기업들엔 올겨울이 유난히 추울 것 같다.

이익원 산업부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