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쪽으로 계속 배를 몰고 가면 더 빨리 인도에 도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콜럼버스를 비웃었다.

지구는 네모나기 때문에 인도로 통하는 뱃길은 동쪽밖에 없다고...

콜럼버스는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포르투갈의 왕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왕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깊은 실의에 빠졌던 콜럼버스, 그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1세를 만나면서부터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여왕은 그를 신뢰하고 항해 자금은 물론 선박 2척까지 내준 것.

1492년 8월3일 콜럼버스는 꿈에도 그리던 항해길에 올랐다.

신대륙이 드디어 유럽인에게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중남미의 와틀링 섬을 발견하고 이어 쿠바에 도착했다.

세계사는 신대륙의 발견으로 크게 변했다.

콜럼버스를 후원했던 스페인도 덕분에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호령하는 강대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벤처정신의 원류를 언급할때 흔히 인용하는 얘기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콜럼버스와 이사벨라1세의 역사적인 만남은 5백여년이 지난 21세기 초입 미국의 벤처산업계에선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들은 이사벨라1세가 "지구가 둥글다"는 가능성을 외면했더라면 대탐험가 콜럼버스는 존재하지도 않고, 중남미의 스페인 문화권도,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개척도 미지수라고 여기고 있다.

미국인들이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가는 콜럼버스이고, 이사벨라 1세는 벤처의 가능성에 배팅한 최초의 벤처캐피털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벤처기업이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미국인의 벤처산업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금 한국에선 벤처위기론이 팽배하고 있다.

거품론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IMF(국제통화관리기금)이후 재벌위주의 경제체제를 대체할 것으로 여겨졌던 벤처산업이 뿌리부터 타격을 받을 우려에 처해 있다.

벤처기업과 벤처금융의 메카인 서울 테헤란로에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어떤 기업이 몇 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을 것이다" "닷컴기업의 상당수가 M&A(기업인수합병) 매물로 나와 있다" "벤처캐피털의 자금이 메말라 도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등.

어디를 둘러봐도 비관적인 우려가 우세하다.

물론 상당수 벤처기업의 도태는 불가피하다.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처지는 기업은 생존을 담보하지 못할 정도로 기술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벤처기업이 망하더라도 살아남는 소수의 벤처가 내뿜는 활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는 분명 경제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경핫벤처 100"은 이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매출 4백억원대의 기반을 잡은 벤처도 있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1년 매출이 평균 20억원 안팎의 창업한지 얼마 안되는 신생기업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들 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애정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이들중 얼마나 많은 업체가 경쟁에서 밀릴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신선한 아이템과 틈새기술은 우리경제의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5백여년전 콜럼버스가 이사벨라1세를 만나면서 신대륙이 비로소 인류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듯이...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