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한 지 한달만에 자동차에서 다시 기름이 새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일 ''미쓰비시는 믿을 수 없는 회사''라는 한 소비자의 호소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쓰비시자동차에 쇠락의 신호탄이 떨어진 것은 지난 7월18일.77년 이후 23년간 연료 누출과 브레이크의 잦은 고장 등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된 소비자 불만을 은폐해온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미쓰비시는 그러나 이때까지 한번도 무료 회수수리(리콜)를 실시하지 않았고 내부 대책도 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리스크 불감증,경영진은 이 중병에 걸려 있었다.

"운전자를 사지에 몰아놓고는 모른 체 했다"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미쓰비시는 그제서야 63만대의 자동차를 허겁지겁 리콜했다.

설상가상으로 8월29일 경찰이 미쓰비시 본사를 습격해 소비자 불만 자료를 압수하는 장면이 TV 전파를 타고 전국에 공개됐다.

이날 미쓰비시 주가는 18%나 폭락하며 하루 낙폭으로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4위 자동차메이커 미쓰비시가 실패경영의 표본으로 전락하는 데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쓰비시의 몰락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일본차가 최대 호황을 누리던 지난 89년 사장으로 취임한 나카무라 유이치(현재 고문)는 매출 신장과 몸집 불리기에만 몰두했다.

"설계인원이 부족하고 출시전 차량검사가 허술하다"는 현장보고를 "신제품 출시를 지연시킨다"는 이유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되자 사내에는 ''사장에게 불리한 보고를 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찍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리스크 불감증의 싹은 이때 잉태됐다.

나카무라 사장은 95년 고문으로 물러난 후에도 인사 전횡을 일삼았다.

그는 심복으로 소문난 츠카하라,키무라를 순서대로 사장자리에 앉혔다.

직원들은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이 나카무라에게 잘 보여 출세했다고 수군거렸다.

나카무라에게 잘 보이면 퇴직 후에도 ''고문''이란 이름표를 달고 3∼5년간 자리 보전이 가능했다.

이런 ''고문''들이 무려 50명에 달했다.

"입을 다무는 게 출세에 이롭다"는 무사안일과 "내가 말해봤자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체념이 사내에 만연했다.

고객의 소리보다는 매출,실력보다는 정실이 강조됐다.

지난달 사임을 발표한 가와소에 가쓰히코(63) 전 사장은 이에 대해 "경영진이 ''회사간판''이란 허울만 너무 의식해 화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미쓰비시상사 도쿄미쓰비시은행 미쓰비시중공업 등 대가족을 거느린 그룹 전체의 신인도 하락을 피하기 위해 리콜을 미루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됐다는 얘기다.

10여년간 중병을 앓아오던 미쓰비시는 응급치료 시기를 놓친 후 이제서야 목숨을 건 대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