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을 네이버스컨소시엄에 매각키로 본계약을 맺기 직전인 지난 3월.

"계약파기에 대비해 구체적인 손해배상청구 요건을 넣어야 한다"

"하나 뿐인 협상자에게 부담을 줄수 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측이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을 주축으로 구성된 인수기획단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했던 내용이다.

격론끝에 네이버스에 입찰보증금을 받지 않기로 하고 계약파기시 구체적인 손해배상 청구 요건을 넣는 사항도 완화돼 본계약은 체결됐다.

그리고나서 7개월 뒤인 지난 2일 네이버스는 계약파기를 통보했다.

이제서야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은 계약파기가 손해배상요건에 해당되는지를 검토하는 ''뒷북''을 치고 있다.

한국의 빈곤한 국제협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우자동차의 매각불발이나 이전의 제일은행 헐값매각 논란 등도 비슷한 꼴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원인의 하나로 ''풋내기 협상가''가 설치고 다니는 점을 꼽는다.

제일은행을 매각하기 위해 미국의 뉴브리지캐피털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였던 지난 99년 말.

뉴브리지캐피털은 아시아태평양담당본부장이던 웨이지안 샨이란 전문가와 변호사를 내보냈다.

이에 맞선 우리측 파트너는 금융감독위원회 국.과장및 사무관.

법무법인과 컨설팅사로부터 자문을 받았지만 국제협상 전문가는 없었다.

협상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꿈도 꾸지 못할 진용이다.

샨이 조건을 제시하면 뒤돌아서 논의한 뒤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을 뿐이었다.

당시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에 따라 해외매각을 서둘러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처음으로 은행을 해외에 파는 큰 장사를 하는 데 경험도 부족한 공무원이 정면에 나선 것부터가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직자로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윗선에서 각종 주문이 들어오는데 따라 협상 입지만 좁아졌다는 평가다.

IMF 직후인 98년2월 한국이 개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설명을 위해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이 워싱턴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을 만났다.

은행의 개혁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정부 차관급 인사는 미리 준비한 거시경제동향만을 더듬거리는 영어로 읽어 나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정부나 채권단도 이젠 비싼 돈을 주고 협상 전문가를 쓰고 있다.

국제적인 딜(거래)을 성사시키기 위해 모건스탠리나 골드먼삭스 등 세계적인 투자기관, 컨설팅회사의 자문을 받아 일을 추진하는게 다반사다.

대우차 매각을 위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배제하고 대우구조조정협의회를 만들고 국제거래경험이 많은 오호근 의장에게 전권을 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는지, 적절한 견제와 감시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오히려 정부나 채권단이 일일이 간섭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대우자동차의 매각과정에서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미국 포드사가 제시한 가격을 공개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 의장은 "구속성이 없는 제안이었는데…. 말도 안되는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포드측이 "비밀준수 협약을 무시했다"고 정부당국에 항의한 것도 당연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만약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포드와 채권단이 최종 가격협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섣부른 애국심과 비전문가가 판치는 현실이 우리가 국제협상에서 번번이 깨지는 이유인 셈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주고 전문가를 활용하더라도 이럴 경우 돈만 날리는 것 외에 별 수가 있을 리 없다.

매각협상을 자문했던 한 외국인은 "정부는 물론 금융기관이나 기업들도 양해각서(MOU)나 투자의향서만 맺으면 거래가 모두 성사된 줄 알고 남들에게 알리기 바쁘다"며 아마추어 협상가의 약점을 꼬집었다.

협상에 대한 치밀한 전략부재속에 상전이 너무 많아 조그만한 사항도 각종 기관에 다 보내다 보니 정보가 누출되고 결국 딜이 깨지는 경우도 많다.

부실채권을 사고 파는 론스타의 심광수 회장은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현실이지만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