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대 영문과 4학년 조모(26)씨는 2일 강의가 없는데도 학교로 나왔다.

학교 근처의 PC방을 찾기 위해서다.

게임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취업사이트를 뒤지는게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조씨는 "경쟁력"을 높이려고 무려 1천만원을 들여 1년간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하지만 번번이 낙방이다.

"회사 접수창구에 이력서라도 맡겨 놓고 오는 날은 성공한 편에 속한다"는게 조씨의 하소연이다.

H대 경제학과 4년생 김모(27)씨도 이날 학교로 달려와 취업정보실을 찾았다.

그 사이에 새로 붙은 사원모집 공고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금융기관''이라면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신문에는 금융기관들이 또 다시 무더기 정리해고를 단행한다는 기사만 나와 자포자기 상태다.

경희대 취업정보실 한상백 담당관은 "취업원서가 작년의 3분의 1로 줄었다"고 설명한다.

업종과 급여, 근무지를 따지지 말라는 ''3무(三無)''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화여대 취업정보센터의 표경희 실장은 "요즘 대학가엔 IMF 직후에 나돌던 ''취업대란설''이 유포되고 있다"고 말한다.

6월까지만 해도 노동부는 30대그룹 계열사들이 올 하반기에 2만2천4백81명을 뽑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작년 하반기보다 30% 정도 늘어난다는 ''낙관론''이었다.

다른 취업관련 기관들도 비슷한 상황을 예견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희망사항''으로 끝나버렸다.

고유가에 증시폭락, 반도체값 하락, 제2의 구조조정 등 악재가 연거푸 몰아치면서 기업들은 문을 닫아버렸다.

줄이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각 그룹 계열의 제조업체들은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절반 이하로 대폭 축소했다.

정기공채와 수시채용을 포함해 2백명을 뽑기로 했던 주택은행은 정기공채를 취소했다.

작년에 2백50여명을 뽑았던 굿모닝증권은 50명 정도만 선발할 예정이다.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가 전자.정보통신업종과 유통업계.

삼보컴퓨터는 대졸사원 50명 외에 매달 20∼30명씩 경력자를 뽑을 예정이다.

LG-EDS시스템은 5백명을 선발키로 하고 이미 1차 서류전형을 마쳤다.

현대전자는 채용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긴 했지만 하반기에 6백명을 새로 뽑는다고 한다.

롯데백화점은 사업확장 전략에 따라 3백명을 뽑은데 이어 곧 추가선발이 있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 역시 사정은 녹록지 않다.

외국어와 각종 자격증으로 중무장한 ''취업재수생''들이 무더기로 몰려든 데다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서류전형에서 ''경력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벤처기업과 인터넷사업체들이 상당한 고용흡수력을 발휘했지만 이젠 그 시절도 막을 내렸다.

갔던 사람마저 U턴하는 판국에 새 사람을 뽑을 턱이 없다.

여기에다 중견기업들은 채용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신입사원 공채''라는게 사실상 없어졌다.

''수시채용'' 형식으로 맘에 드는 사람을 그때그때 뽑아 쓰는 곳이 많아졌다.

채용자도 주로 경력자다.

채용방식이 ''그물형''에서 ''낚시형''으로 바뀐 것이다.

아무리 ''눈높이''를 낮춰도 소용없게 된 것이다.

고학력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건설업종이 최악의 침체를 보이면서 이제는 ''날품팔이''를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서울 남대문시장 주변 등 새벽 인력시장은 ''전쟁판''이나 다름없다.

3D업종의 제조업 현장은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연구원 이종구 박사는 "이대로 가면 취업재수생까지 포함해 40만명에 가까운 대졸자들이 ''취업 포기'' 상태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앞으로 외국인고용제도가 바뀌면 학력과 관계없이 고실업사회로 고착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내놓는다.

우선은 ''경제회복''이 관건이겠지만 인력시장의 수급불균형 해소 등 근본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인터넷 취업정보 제공회사인 캐리어써포트가 작년 9월 이후 1년간의 상황을 분석한 결과 사람을 뽑는 기업의 45.6%가 경력사원을 희망했지만 구직자중에는 58%가 미경력자였다.

또 기업들이 원하는 상위직종은 전산·프로그램,인터넷,영업기획,디자인 등인데 비해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희망직종은 관리.사무,무역, 경리.회계, 건설 등의 순이었다.

전재희 한나라당 의원은 "취업난을 기업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산업계의 인력수요와 교육기관의 인력공급 체계를 연계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최승욱.유영석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