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님 집에서 쫓겨 날지도 몰라" "주말에는 회사에 못 나오게 우리가 무조건 막아야 해"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 아카데미타워 4층 3R(대표 장성익).이 회사안에선 요즘 "위기론"이 한창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는 장 사장(33)이 드디어 두 딸 민지(6)와 영주(4)한테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마침내 집에 못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장 사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퇴출 위기에 몰린 장 사장의 일과는 어떨까.

한국 벤처기업 CEO(최고경영자)의 모델이랄 수 있는 그의 하루를 추적해보자. 오전 8시30분.폭탄맞은 머리 그대로 신림동 국제산장 아파트를 나온 그가 사무실에 들어서는 시간이다.

책상에 앉은 그는 먼저 e메일을 확인한다.

"아침에 와보면 50통 이상 메일이 쌓여 있습니다. 직원들이 건의하는 내용과 거래처 업무와 관계된 것들이지요"

e메일을 읽고 답장하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오전 10시 기술개발 회의가 시작된다.

인터넷 사업팀과 DVR팀 등과 매일 돌아가며 회의를 한다.

대학에서 시작한 벤처기업답게 3R의 회의는 자유토론으로 진행된다.

이말 저말 못 하는 말이 없다.

엔지니어 출신인 장 사장은 회의에도 적극 참여하지만 회의 중간에 중요한 업무 결재도 해야 한다.

금세 시계는 낮 12시를 가리킨다.

그는 감자탕 설렁탕 등 탕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은 피자나 햄버거 등을 원한다.

짧은 신경전은 직원들의 승리로 대개 끝난다.

"얼큰한 국물맛이 그립다"는 장 사장은 대개 4~5명의 직원들과 밥을 먹는다.

돌아가며 식사를 하지만 직원들이 1백20명이나 되다 보니 잦지는 않다.

사무실에 들어오면 졸려서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책상옆에 있는 야전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이거나 쉬운 잡지를 읽는다.

좀 쉬고 나면 외부 손님과의 미팅이 계속 이어진다.

차를 타고 테헤란밸리도 자주 찾는다.

차속에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다.

그는 둘째 딸의 이름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씨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클래식을 즐긴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듣는 노래는 백지영의 "새드 살사".그냥 신나서 좋다는 그는 자우림과 클론의 팬이기도 하다.

오후에 시간이 남으면 모교인 서울대를 찾는다.

교수님 말씀도 듣고 벤처기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준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녁 식사는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업무와 관계 없는 사람들과 자주 약속을 잡는다.

다시 들어와야 하므로 되도록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만난다.

오후 8시쯤에 사무실로 돌아오면 다시 회의를 연다.

임원들과 경영에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께.

이때가 되면 장 사장과 면담을 하려는 직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직원들은 그를 만나는 것을 "태클"이라고 부른다.

항상 바쁘기 때문에 갑자기 기회를 봐서 덮치지 않으면 좀처럼 만날 수 없기 때문.그들은 일에 대한 이야기와 장래에 관한 고민 등을 털어놓는다.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형이나 선배같은 존재로 통한다.

이 시간에 마음이 맞으면 직원들과 1층 오락실에서 "펌프"나 DDR를 한 게임 뛰기도하고 컵라면이나 치킨 족발 등으로 야식을 하기도 한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자정께.아이들은 물론 잠이 들었다.

다시 그날의 일을 정리하고 궁금했던 점을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아본다.

기분전환을 위해 케이블TV를 보다 잠자리에 들면 새벽 2~3시쯤.

"돌이켜보면 어떻게 이렇게 살아왔는지 놀랍습니다. 하지만 그 바쁜 가운데 짜릿짜릿한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다들 벤처에 인생을 거는 이유가 아닐까요"

(02)840-3500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