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3일 발표한 자금 안정대책은 자금성수기인 추석을 맞아 시중에 유동성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한편 돈이 몰리고 있는 은행의 기업금융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대책으로 시장 분위기가 호전돼 기업 자금난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하지만 당면한 자금경색 현상은 시중의 유동성 부족 탓이 아니라 개별기업 신용차별화에 따른 문제라는 점에서 대증처방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기업자금 대책 =한국은행은 연 3%의 저리로 은행에 공급하는 총액한도대출 제도를 손질키로 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은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다.

기업에 돈을 많이 빌려주는 은행에 한국은행의 값싼 자금을 더 주겠다는 취지다.

또 필요할 경우 수신이 부진한 제2금융권에도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키로 했다.

지난 6월 내놓은 자금시장 처방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됐다.

정부는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에 대한 보증한도를 기존 40%에서 50%로 상향 조정, CBO의 상품성을 높여 주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의 부분보증 재원을 현행 2천5백억원에서 5천억원으로 늘려 보증여력도 확대키로 했다.

대신 신용등급 BB이하 회사채 편입비율을 전체 CBO 발행액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21일 현재 5조5천40억원에 그치고 있는 채권전용펀드 조성액을 9월말까지 10조원으로 늘리는 한편 연기금 등 자금여유가 있는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10조원을 추가 조성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은행들엔 지점장 전결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등 신속한 여신결정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추석을 앞둔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추석전에 4조5천억∼5조원의 현금을 공급하고 임금체불업체 등에 대해서는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2억원까지 특례 보증해 주도록 했다.

◆ 금융계 평가 =금융계는 정부가 기업자금 시장에 대한 보완책을 내놓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대책의 실효성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시중은행 자금부장은 은행들이 자금이 부족해 기업대출을 꺼리는 것은 아니라며 정부 대책의 효과에 물음표를 달았다.

제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확보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이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리고 있는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게 그의 진단이다.

정부가 나서 신용보증서를 무차별적으로 발행하지 않는한 은행들의 기업에 대한 대출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대출실적이 많은 은행과 임직원에 포상을 한다거나 고의 또는 중과실에 해당되지 않는 부실여신이 발생할 경우 해당 임직원을 문책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자금시장안정대책에 으레 들어가는 내용들이어서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시중은행 대출담당 임원은 "이번 조치로 중견 및 한계기업의 부도 가능성은 크게 줄겠지만 기업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