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의 진념''

지난 4월 16대 총선에서 내심 서울의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던 진념 신임 장관의 슬로건이다.

그 집념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대신 경제관료로서 최고의 지위가 될 경제부총리로 꽃을 피우게 됐다.

62년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고시 행정과(14회)에 합격,63년 햇병아리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사회에 몸을 내디딘 뒤 개발시대 엘리트 관료의 정석코스를 두루 거쳐 결국 정상에 오른 것이다.

진 장관은 6공 노태우 정부 후반부 동력자원부 장관,김영삼 정부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뒤 현정부 들어서는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았다.

이 때문에 한때 ''직업이 장관''이란 평가도 받았다.

3개 정권을 뛰어 넘으며 장관으로 중용된 것은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운이 좋았고 출신지역(전북 부안) 덕도 상당히 봤다는 평가도 있다.

또 한때 공직사회에서 벗어나 있던 그가 97년 말 부도상태였던 기아그룹의 무보수 회장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마당발에다 대화와 토론을 중시하는 스타일에 힘입은 바 크다.

노동부 장관직을 떠난 지 한참됐지만 그는 지금도 민주노총 등 재야 노동운동가와 관변 노동계 인사들까지 "서울대 후배들을 만난다"는 명분으로 한데 모아 ''곱창집''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화합을 도모하기도 했다.

집권 후반기 DJ노믹스를 이끌 ''구원투수''로 기용된 데는 민·관을 넘나든 이같은 거중 조정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재경원과 달리 신설 경제부총리는 예산권 없이 경제정책조정회의로 지도력을 발휘하고 팀워크를 이끌어내야만 하는 처지다.

배짱도 만만치 않다.

97년 기아 회장 시절 술자리에서 ''장관도 하고 기업 회장까지 했으니 다음엔 국무총리나 하시죠''라고 덕담을 건네자 농반 진반으로 "나의 꿈은 경제 대통령이야"라고 말한 적도 있다.

지난 번 임시국회에서 예산 전용을 추궁하는 야당의원들의 질문공세를 당당하게 받아쳐 여당의원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벤처와 신경제,국경없는 무한경쟁''이 화두가 된 현대 경제의 야전총사령관으로서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표를 붙이는 측도 많다.

또 개발·성장기에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어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공공개혁을 진두지휘할 때도 낮은 점수를 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과거 경험이 풍부하고 마당발로 주변에 인적 자산이 많다지만 바로 이 점때문에 좌고우면 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몇차례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공직자 재산등록과정에서 주식보유사실이 드러나면서 ''주식투자를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누구한테도 흠을 잡히지 않아 ''요령 좋은 꾀돌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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