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금융감독위원회의 한 간부로부터 ''희한한'' 고민거리를 들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금융사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오는데 ''자신으로서는 해결해줄 수도 없고 해결해서도 안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내용인 즉, 전은리스라는 지방 금융사를 놓고 인수경쟁을 벌이던 두 업체가 해결을 못보자 금감위로 찾아와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사정한다는 것이었다.

"두 회사를 불러다 놓고 인상만 한번 쓰면 되는 일 아니냐"고 물었더니 해당 간부는 "그걸 원하는 모양인데,지금이 어느때냐"며 손사래를 쳤다.

해당사에 전화를 해봤더니 "우리가 할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이쯤 되면 정부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오히려 금감위가 직무유기를 한다는 투였다.

생각해보면 최근 정부는 시장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느낌이다.

최소한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예전 같았으면 안건마다 정부생각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만 최근에는 여간해서 정부를 주어로 내세우지 않는다.

현대사태와 관련해서도 금감위 대변인은 ''정부는…''이라는 식의 논평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이라고 언급했다면 뒤에 반드시 ''…라는 채권단들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식으로 뒤처리를 한다.

사석에서는 톤이 달라지지만 반드시 ''비보도(Off the record)''가 전제돼야 ''우리가…''라는 주어를 쓴다.

이는 어쩌면 지난달 11일 5만여명의 은행 노조원들이 ''관치철폐''를 외쳐 얻은 결과물일 수 있다.

은행원들은 정부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관치철폐를 주장했고 그 결과 관치금융철폐를 국무총리 훈령에 명문화하기로 정부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아직도 "내가 나서면 저쯤이야"라는 유혹을 많이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실제 그걸 부추기는 유혹도 많다.

전은리스 건처럼 이해 당사자들이 직접 개입을 요구하기도 하고 정부 정책만 기다리는 시장 심리도 아직은 여전하다.

관치는 관(官)과 민(民)이 함께 노력해야 털어낼 수 있는 오래된 더께 같은 두터운 벽인 모양이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