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1세대의 대부로 통하는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62)은 감투 쓰기를 매우 싫어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타이틀을 달아주는 대외 활동은 한사코 사양한다.

그런 정 사장이 지난해 ''벤처리더스클럽 회장''이라는 자리에 앉았다.

이 클럽은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의 모임.

그는 지난주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이 클럽의 세미나에서 회장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벤처업계 일각에서는 그의 사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벤처업계에 나타나고 있는 ''패거리 문화''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는 것.

더욱이 닷컴 기업들의 미래가 다소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가 돌연 사임함에 따라 그 진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그를 만나 사퇴 배경과 젊은 벤처인들에게 던지는 고언을 들어본다.


-최근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벤처리더스클럽 모임에서 회장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사임 배경은 무엇입니까.

"감투 쓰는 것을 싫어하지만 제대로 된 벤처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해 작년말 회장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7개월동안 이끌어 왔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았다고 봅니다.

그것으로 제 임무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새로 맡아서 벤처기업인들을 잘 이끌어야 합니다"


-최근 일부 벤처기업인들은 기술개발보다는 머니게임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것보다는 학연 지연같은 1차적 인연에 얽혀 국내에서 시장 따먹기식 게임에만 몰두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해해 여러 차례 실망감을 표시하셨는데 사임배경이 이와 관련이 있는지요.

"벤처가 발전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개발 생산 재무 마케팅 인사 등 여러 요소가 경영에서 중요합니다만 이들보다 더 긴요한 게 철학입니다.

벤처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도전정신입니다.

남의 것을 흉내내거나 따라가려 하지 말고 남이 안 하는 분야,남보다 앞서갈 수 있는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젊은 패기로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눈은 세계로 돌려야 합니다.

거센 풍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탐험가의 정신이 바로 벤처정신입니다.

이 과정에서 학연 지연으로 뭉치면 안 됩니다.

이는 파벌을 조장하는 것이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결코 국내 기업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기업, 다국적기업이 라이벌이지요.

그런데 국내에서 끼리끼리 뭉쳐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그 부류에 끼지 못한 많은 기업인을 좌절시킬 뿐입니다"

-벤처기업인에게 중요한 다른 철학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 다음으로는 희생정신입니다.

리더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잘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종업원과 더불어 사는 기업, 사회구성원과 더불어 사는 기업을 지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덕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윤리경영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일부 벤처기업의 도덕성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벤처기업의 명예와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윤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기업은 모래위에 지은 집에 불과합니다"

-최근 벤처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낙심하는 기업인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날씨까지 무더워서 더욱 힘겨운 시기입니다.

"벤처인에게는 여름이 없습니다.

휴일도 없고 밤낮도 없습니다.

오로지 세계 무대에서 골리앗 기업들과 전쟁만 있을 뿐입니다.

그 최전선에 벤처기업인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 전쟁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쟁입니다.

나와 우리 가족 이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벤처는 이제 피할 수 없는,이 나라 경제의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싫든 좋든 벤처기업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이미 상당수의 벤처기업과 벤처기업인들이 "목숨을 걸고"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개발에 몰두하다가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30대의 젊은 벤처기업인이 몸이 상해 쓰러지는 일도 있습니다."

-한국이 벤처기업을 하기에 기질적으로 좋은 나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우리나라가 벤처기업을 하는데 경쟁우위요소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얼마전 일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도쿄 데이코쿠호텔에서 열린 이 세미나의 주제는 ''아시아의 미래''였는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참가한 아주 비중있는 회의였습니다.

행사의 하일라이트로 정보통신혁명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과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통신기업인 NTT도코모와 차이나닷컴 최고경영자와 함께 패널리스트로 참가했습니다.

사회자는 한국의 벤처기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벤처붐이 일어났는지,또 성공요인은 무엇인지 등등을 물었습니다.

이같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한국의 벤처에 대해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한국은 민족 자체가 벤처형이라고 답했습니다.

순발력있고 성취욕이 강하며 근면한 게 벤처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지요.

일본인들은 벤처기업에 관한 한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발흥해 앞서간다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벤처열기에 놀라워했습니다.

이런 속도와 분위기를 이어가야 합니다"

-최근 벤처기업 사이에는 벤처기업이 대표이사 한 사람에 의존하는 정도가 너무 커서 조직문화나 시스템을 만들자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미래산업도 조직이 커지고 관계사들이 늘어나고 있어 영속조직으로서 기업을 만들려면 이런 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신뢰가 중요합니다.

믿고 맡기면 문제가 없어요.

맡기는 사람이 맡을 사람을 믿지 못해서 자꾸 간섭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일이 안 되는 거지요.

정치한 시스템보다는 사람을 믿고 일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믿고 맡기는 자세로 물러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저는 최근에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태어나서 자라고 늙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하나의 과정이라는 내용입니다.

저자인 풀검 목사는 죽음을 삶의 정점으로 파악하며 축제로 받아들이라고 권유합니다.

준비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사업가의 은퇴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인은 언제나 그만둘 때를 생각해야 하고 특히 멋진 은퇴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멋진 은퇴가 무엇인지는 각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하는 후회는 가장 큰 죄악입니다"

< 김낙훈.안상욱 기자 nhk@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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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술 사장 약력 >

<>1938년 전북 임실 출생
<>원광대 종교철학과 졸업
<>62-80년 중앙정보부 기조실 조정과장
<>83년 미래산업 설립
<>라이코스코리아 회장
<>저서:왜 벌써 절망합니까
<>생활신조:사랑 겸손 정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