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55.여)는 최근 벤처기업에 투자한다는 Y씨(52)의 소개로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L인베스트의 사무실을 찾았다.

수천만원짜리 인테리어로 꾸며진 사무실에는 유명 연예인과 고위층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현금을 들고 입금 순서를 기다리는 투자자들이 늘어서 있어 믿을 만한 금융기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주 2%이상의 배당금을 보장해준다는 "각서"를 믿고 지난 5월초 3천만원을 출자했다.

실제로 일주일 뒤 자신의 계좌에 배당금 명목으로 70만원이 들어왔다.

한달동안 매주 60만~75만원씩 들어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6월초 경찰이 유사수신행위 일제 단속에 나서자 이 회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조사 결과 L사에 당한 피해자는 모두 1만5천여명,피해액은 2천4백9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위기의 틈새를 딛고 태어났던 유사금융업체들이 지난 해 9월 검찰의 철퇴를 맞은 후 잠잠해졌다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들의 사기행각에 농락당한 사람들의 피해액수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법원도 이들에게 "사기죄"를 적용해 잇달아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

그러나 빼돌린 돈을 되찾아 피해자들이 본전을 건져간 사례는 하나도 없다.

<>사기수법=이들은 우선 고객들에게 고수익을 내건다.

아파트에 광고전단을 뿌리거나 신문에 광고를 낸 뒤 고객을 통해 고객을 늘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

심한 경우 월 20%의 배당률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지불준비금 납입","새마을금고 안전기금에 의한 원금 보장" 등 "안전"을 최대한으로 홍보한다.

작년에 빚어졌던 사고와는 달리 고객이 중도에 환불을 요구하면 지체없이 내주기도 한다.

이자까지 듬뿍 얹어주기 때문에 대부분 회사측의 권유에 따라 재투자하게 된다.

새 투자자를 데리고 오는 고객에게는 수익률을 더 높여주거나 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피라미드 영업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들은 지난해 문제가 됐던 "파이낸스"라는 이름을 아예 버리고 "인베스트먼트","벤처트러스트","투자개발","투자자문" 등의 간판으로 바꾸었다.

지명도 있는 인사를 고문이나 자문역 임원 지점장 등으로 영입하고 연예인을 동원하는 전형적인 홍보활동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고객이 일정수에 달하거나 투자자금이 적당히 모이면 한순간에 사라진다.

고객들에게는 "사무실을 확장이전한다"며 일주일 뒤에 찾아오라고 통지해 놓고는 잠적하는 것이다.

<>법원 판결=법원은 유사금융업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는 18일 불법 다단계금융회사를 통해 1천1백12명의 투자자로부터 1백억원대의 자금을 편취한 늘푸른투자금융의 자금관리이사 전철기(40)씨에게 사기죄와 방문판매법 위반 등으로 징역2년6개월을 선고했다.

또 거송투자금융,거송엔젤산업,거송재테크산업 등 다단계금융회사를 만든 뒤 새로운 투자자들을 끌어오는 사람에게 투자금의 7%에 해당하는 수당을 지급한다며 3천78회에 걸쳐 1백90억원을 빼돌린 거송그룹 회장 김상수(54)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투자계획과 배당금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기만한 것은 사기"라고 밝혔다.


<>문제점=이렇게 범인들이 적발되더라도 피해변상은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유사금융업체는 허가받은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법상 "일반회사"이여서 여기에 투자한 금액은 "예금자보호법"에 규정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금융감독기관의 감독도 받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기범들이 재산을 남의 앞으로 돌려놓거나 숨겨버려 피해자들은 "범인 구속"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유영석.정대인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