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터넷 업체들이 요즘 "경영 다이어트"에 한창이다.

"구(舊)경제" 기업들의 전유물로 치부됐던 인원 삭감 등 다운사이징이 새로운 유행으로 확산되고 있다.

증시 등지에서의 "닷컴 붐"을 등에 업고 광고비 등으로 물쓰듯 돈을 뿌리던 올초까지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최근 한두달 사이에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단행했거나 실시 예고한 닷컴 기업들만 꼽아도 30개사가 넘는다.

의료 사이트 업체인 dr쿠프닷컴사가 전체 임직원의 35%에 해당하는 50명을 정리한 것을 비롯, 자동차 판매업체인 카오더닷컴(1백명, 35%), 보험회사 인스웹(1백명, 40%), 가구업체 리빙닷컴(50명, 13%), 인터넷 웹사이트 검색 서비스업체인 알타 비스타(50명, 6%) 등 줄잡아 30여개사가 2천여명의 임직원을 내보냈거나 정리키로 했다.

심지어 닷컴 기업계의 간판주자인 아마존도 최근 1백50명을 정리했다.

여기에 자금난 등을 견디지 못하고 간판을 끌어내린 기업들까지 포함하면 일자리에서 내몰린 닷컴 회사원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락 사이트업체 덴닷컴(2백명), 사건뉴스 전문업체 APB뉴스닷컴(1백40명), 완구 소매업체 토이즈마트닷컴(1백70명) 등이 그 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 닷컴 실직자들의 숫자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전체 인터넷 비즈니스 종사자들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 닷컴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정한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다른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실제로 적지않은 닷컴 해직자들이 졸지에 당한 실직을 "재충전을 위한 휴식의 기회" 등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시류만을 좇아 섣불리 닷컴 열차에 올라탔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닷컴 실직자들도 적지는 않다.

로라 슈미트라는 전문직 여성은 작년 여름 거액의 연봉과 최소한 5백만달러를 호가할 규모의 스톡 옵션 등 매력적인 조건에 이끌려 서드에이지미디어라는 인터넷 정보 서비스 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이달초 회사로부터 "경영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 해고대상"으로 통보받으면서 그의 장밋빛 꿈은 "10개월 동안의 백일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비슷한 조건에 매혹돼 인터넷 오락 서비스 기업에 들어갔다가 3개월 만에 쫓겨난 20대의 컴퓨터 엔지니어는 "회사가 제시했던 각종 인센티브는 달콤한 사기극에 불과했다.

창업 초기에 사업의 기틀을 잡는데 우리들 같은 전문 인력을 실컷 이용해 먹고 자기들 멋대로 내쫓았다"며 "토사구팽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닷컴 기업들의 대대적인 정리해고 붐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저 유행에 편승,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없이 서둘러 창업한 인터넷 회사들이 적지 않은 만큼 이들 기업들의 "경영 및 인력 거품빼기"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미 상당수 닷컴 기업들이 창업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종합적인 웹 금융 서비스 업체를 지향하며 덩치 불리기에 열을 올렸던 인스웹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앞으로 6개월 동안 2백40명의 임직원 가운데 40%를 정리하고 핵심 업종인 보험에만 주력키로 했다.

이처럼 미국의 닷컴 기업들이 경영 다이어트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분간 큰 폭의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닷컴"이라는 이름만으로 많은 투자자들로부터 눈 먼 돈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때는 지나가고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 인터넷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디지털 다위니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