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와 기업어음(CP) 시장이 마비된데다 금융구조조정을 앞둔 은행들도 대출을 꺼려 기업의 직간접 자금조달 파이프가 막혔다.

금융권 전체에 돈은 적지 않지만 이 돈이 기업들에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다.

<> 신용의 위기 =최근 자금경색 현상은 금융권내의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기업 신용도에 따른 차별화 경향이 확대된데 따른 결과다.

여기에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겹쳐 실물부문으로의 자금공급줄이 막혀 있다.

특히 새한 워크아웃 신청이후 새한과 비슷한 신용등급을 가진 중견기업들의 자금난이 극심하다.

이들 기업이 발행하는 트리플B(BBB)급 회사채에 대한 매수세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한 채권딜러는 "새한그룹 워크아웃과 현대쇼크 이후 기업들의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초우량 기업 회사채와 국고채에만 매수세가 집중되고 있다"며 "삼성 LG SK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회사채 금리를 아무리 높여도 신규발행은 물론 차환 발행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수요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초우량기업인 S사는 단기금융시장에서 연 7-8%에 조달할 능력이 있는데도 2-3년짜리 장기자금을 연 10%대에 미리 끌어둘 정도다.

CP 시장은 아예 기업들의 급전조달 창구가 돼 버렸다.

증권사에 의해 중개된 CP중 만기가 보름미만인 CP가 60%에 육박하고 있다.

돈이 몰리고 있는 은행 대출창구도 얼어있긴 마찬가지다.

제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올리기에 급급한 은행들이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종금의 유동성 문제로 단기성 기업자금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온 종금사에도 비상이 걸려 자금시장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 산넘어 산 =올 하반기중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31조원으로 작년 하반기보다 50%나 많다.

당장 7월 만기 회사채 규모는 6월보다 두배나 늘어난 5조5천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하반기중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가운데 35%가 BB+이하 투기등급 채권이다.

금융회사들은 투기등급 회사채를 상환받은 자금으로 국공채나 초우량등급 회사채에 대한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대체자금 공급원이 마련되지 않는 한 신용도가 낮은 중견기업의 부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불씨는 또 있다.

하반기 보증 회사채 만기가 대거 도래하는 가운데 채권시장엔 보증채의 씨가 마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회사채 발행액중 보증채 비중은 지난달 2.5%로 곤두박질쳤다.

나머지는 모두 무보증채다.

반면 하반기에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중 보증채 비중이 75%에 달한다.

보증기관들의 보증여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회사채 차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은행권이 상반기 결산을 맞고 있는데다 투신권도 싯가평가제를 앞두고 부실채권을 상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6월말 자금대란설은 그래서 나온다.

실물부문의 자금경색현상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