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칠 한국전기초자 사장은 "열린경영"으로 회사를 재건시켰다.

그가 한국전기초자 사령탑으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 97년 12월.한국유리그룹에서 대우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한국전기초자는 당시 노사분규로 공장이 가동되지 않는 등 위기 상황이었다.

그는 본사가 있는 구미로 혼자 내려가 하숙하면서 직원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그러면서 노사간 신뢰를 회복시키기위해 회사의 모든 경영상황을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공장이 정상 가동되자 그는 고부가 위주로 제품을 재구성해 수익성을 높였고 부채비율을 1백%이하로 낮춰 내년부터 무차입 경영에 들어가기로했다.

"어려움을 겪던 회사가 단시일내 정상화된 것은 모든 임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준 덕분입니다. 특히 간부 사원들은 97년말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고 있지요"

서 사장은 임직원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전기초자가 없었을 것이라며 지난 3년간을 회고했다.

취임 당시 그는 회사 정상화에 회의를 느끼기도했다.

부즈앨런 등 전략컨설팅업체조차 회생이 어렵다는 경영평가를 내놓았다.

77일간의 파업 후유증으로 공장이 제대로 돌지 못했고 임직원들의 사기는 아주 침체된 상태였다.

회사를 살리려고 애쓰기 보다 고용보장만 요구하는 이기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자금난도 심각해 공장을 신축하기 위해 발행한 기업어음(CP)의 만기가 속속 돌아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지요. 외환위기 직후라 용융로를 돌리는데 필요한 현금을 꾸기도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공장을 가동하는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꺼진 용융로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리고 혁신작업에 들어갔다.

혁신은 신뢰회복에 촛점이 맞춰졌다

"경영정보를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97년 12월 한달동안 사원들을 대상으로 17차례의 경영현안 설명회를 가졌지요. 빚이 왜 무서운지 환율변동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알렸습니다"

서 사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남들보다 1달러 싸게 파는 대신 생산 비용을 2달러 낮추는 방법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전을 제시하며 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이같은 노력으로 한국전기초자는 서사상 취임 1년이 지나면서 흑자로 전환했다.

지난해엔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율이 30%를 넘는다.

대우로부터 경영권을 넘겨 받은 일본 아사히글라스도 기적같은 일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97년말 3천5백억원에 달하던 차입금을 연말까지 모두 갚아 무차입경영을 할 계획입니다"

서 사장은 이제 납입자본금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체질을 갖췄다고 자신했다.

"밤세워 일하는 연구원들을 위해 간이침대를 사주기로 결제한 때가 가장 자랑스런 순간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서 사장은 2001년 재도약의 해로 삼고 2002년에는 신사업에 진출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총 3천억원을 투자해 TFT-LCD(박막액정표시장치)용 제품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다.

"어려울 때 종업원들과 함께 이를 극복했듯 앞으로도 임직원에게 모든 회사 정보를 공개해 노사간 신뢰를 쌓겠습니다"

경영이 호전됐지만 어려울 때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회사을 이끌어가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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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일본 효고현 출생
<>64년 경상대 농대졸업
<>73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76년 대우중공업 입사
<>92년 대우전자 상무
<>95년 대우전자부품 대표이사 부사장
<>96년 대우전자 부사장
<>97년 한국전기초자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