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한 몽구.몽헌 회장 등 3부자가 경영일선 퇴진을 발표한 지난달 31일,현대 회장가의 일원인 정몽준 의원은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1일 뉴욕시립 바루크대 졸업식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였다.

학위 수여식이 끝난뒤 곧바로 워싱턴을 방문,미국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 남북한 정상회담을 의제로 의원외교를 벌인다는 계획도 잡혀 있었지만 일정을 취소하고 화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태"로 인해 그의 뒷모습은 무거워 보였다.

서둘러 귀국길에 오른 정 의원을 보며,문득 그가 뉴욕에 도착한 30일 저녁 특파원들과 가진 만찬 간담회가 생각났다.

명문 존스홉킨스대학 출신(국제정치학 박사)에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대한축구협회 회장,4선 국회의원,현대중공업 고문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는 그는 기자들에게 여러모로 "군침 당기는" 취재원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남북한 분산개최 문제에서부터 정가 초미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그의 무소속 청산 및 민주당 입당 여부,현대 사태 등 특파원들이 그로부터 듣고 싶었던 얘기는 한 둘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특파원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순발력으로 받아 넘겼다.

월드컵 개최 등 축구 문제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으로 참석자들에게 귀동냥의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이야기 말미에 "기업과 정부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털어놓는 주도면밀함도 잊지 않았다.

70,80년대 국제 통상무대에서 "일본 주식회사" 논란을 일으킨 주역이었던 일본 자동차업계의 예를 들어가며 개진한 지론은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시장경제에 입각한 건전한 협력관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경제라는 원칙을 벗어난 정경 유착이나 도를 지나친 정부-기업 간의 대결구도는 어느 쪽이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존스홉킨스대학 박사학위를 정부-기업 관계를 케이스 스터디한 논문으로 취득한 그에게 현대그룹이 요즘 겪고 있는 갈등과 수난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