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정몽헌.정몽구 회장 등 정씨 일가 회장이 그룹경영에서 전격 물러나기로 한 결정은 이날 오전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이 정 명예회장의 연락을 받고 청운동 자택을 방문한 직후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자신도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이번 결정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해 예상치 못한 일임을 토로했다.

정 명예회장은 최근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보도를 접하면서 현대와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 이같이 생각을 정리했으며 정몽구 회장에게는 이날 발표 이전에 수차례 이러한 뜻을 밝힌 것으로 들었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내용에 대해서는 정몽구 회장도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정몽헌 회장에 대해서도 정 명예회장이 미리 알린 것으로 알지만 이날 기자회견뒤 정식으로 정 명예회장의 이번 결정을 알리겠다고 말해 두 회장 모두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결정이 워낙 뜻밖의 일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퇴진 압박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강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정부에서 이미 밝혔던 대로 압력 등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결정으로 정 명예회장은 지난 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 현대그룹을 일으킨 지 53년만에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서게 됐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 3개사에 각각 0.5%씩의 지분을,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6.8%(앞으로 9%로 확대 예정)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만 남고 이들 회사의 경영에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또 정몽구 회장도 자동차소그룹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대주주로서 배당 등의 권리와 책임만을 진다.

정몽헌 회장은 현대전자 등 관련 계열사의 이사직에서 전면 퇴직하고 대북사업만 맡는다.

현대의 대북사업 창구는 현대아산으로 단일화되기 때문에 정 회장은 현대아산 대표이사를 맡게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번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계열사를 대상으로 이사회 등을 열어 정 명예회장과 정몽구.정몽헌 회장의 이사직 퇴진 등 필요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또 금융부문을 포함한 전 계열사에 대해 빠른 시일내에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책임경영체제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전문경영인 인사구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 내부에서는 정몽헌 회장의 퇴진이 이뤄진 만큼 핵심 스태프인 이익치 회장과 김 위원장이 자진 사퇴할 것이란 관측과 현대내 축이 없어지는 점을 감안해 자리를 당분간 지킬 것이란 전망이 함께 나오고 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구조조정본부 발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거부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정 회장측은 공식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검토중이다.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