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상견례 차원에서 만났는데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말았습니다"

외환은행 김경림 행장은 26일 현대건설과 상선에 대한 자금지원 보도가 나가자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현대쇼크의 발단이 된 김 행장과 정몽헌 현대회장의 면담은 관례상 주채권은행장과 거래기업 회장의 첫 만남이었을 뿐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현대그룹 자금난을 논의하는 자리로 비쳐졌다는 것이다.

김 행장은 "그렇게 중요한 만남이었다면 정 회장이 하필 대명천지에 행장실로 찾아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열린 외환은행 이사회 소식도 실제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시장에 전달됐다.

외환은행은 김 행장 취임후 미뤘던 본부장급 임원인사를 이날 이사회에서 결정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 "현대그룹 자금난해소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긴급 이사회"로 둔갑되면서 문제가 확산됐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사외이사는 "현대그룹 자금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사건이 겹쳐 발생한 현대쇼크는 관련 당자사들 모두가 곱씹어 볼만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현대그룹은 시중에 자금난 소문이 나돌고 있고 바로 전날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정 회장이 주채권은행을 찾아갔다는 점에서 시장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정황증거"상 시장참가자들은 현대의 자금문제가 정말 심각한게 아닌가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외환은행도 지난 17일 현대상선과 23일 현대건설에 대한 당좌대출한도를 5백억원씩 확대했으면서도 하필 이날 언론에 공개해 현대쇼크의 빌미를 제공했다.

시장에서는 "현대그룹이 어려워 정 회장이 외환은행을 찾아갔고 1천억원을 지원받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는 외환은행이 재무구조가 우량한 현대계열사의 당좌대출한도를 현대건설로 옮긴 것 뿐인데도 그룹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커졌다.

현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는 기업지배구조를 좀더 투명하게 개선하고 계열사매각등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해야만 대내외의 신뢰를 얻을 수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현대쇼크는 현대 특유의 둔감한 "기질"과 외환은행의 미숙한 대응,언론의 성급함 등이 빚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관련 당사자들 모두 시장이 얼마나 예민한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