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코리아 데스크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내린 진단은 "일부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97년에 비견할 만한 위기 상황까지는 아니다"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은 그러나 "투신권 부실 등 한계 금융기관들이 빚어내고 있는 불량자산 문제를 방치할 경우 건실한 기업들의 연쇄 부도 사태 등 의외의 파장이 우려된다"며 시급한 대책을 권고했다.

한마디로 "지나친 비관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낙관할 일도 아니다"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 97년 외환위기 당시와의 차이 =크레디 쉬스 퍼스트보스턴 증권의 김진원 한국팀장은 "97년 당시는 태국의 바트화 폭락이 직접적인 도화선이었으며 여기에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과다한 단기외채가 맞바람을 일으켜 걷잡을 수 없는 외환 위기가 초래됐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요즘의 위기설은 순전히 국내문제에 기인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해결책도 한국정부와 관련 금융권및 기업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머징 마켓전문 펀드인 클레멘슨 캐피털의 매리얼 클레멘슨 사장도 "한국은 무역흑자가 감소하고 있으나 아직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 금융권과 기업들도 단기외채 관리에 치중해온 만큼 추가적인 돌발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한 외환위기로 비화될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익스프레스은행의 김준수 한국팀장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은행들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계 은행과 기업들에 대한 여신을 상당 부분 회수하고 대출한도(크레딧 라인)를 축소 조정하는 등 나름의 대비책을 시행해 왔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과 금융기관들이 97년처럼 단기외채에 치여 외환위기를 초래할 소지는 원천적으로 없다고 강조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월가 전문가들은 그러나 투신사 부실 등으로 인한 금융권과 산업계 전반의 위기상황을 그동안 미뤄온 금융산업 개혁 및 기업구조 조정으로 정면 돌파하지 않을 경우 "돌발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아팔루사 펀드의 조현국 이사는 "한국의 최근 경기호황을 뒷받침해 온 자동차 반도체 가전 조선 등 주력 업종들이 주기상 하강국면으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그룹이 증시루머로 곤욕을 치른 일이나 새한그룹의 침몰과 꼬리를 물고 있는 중견기업 위기설 등은 이같은 상황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정지희 지배인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미진한 가운데 상당수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이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계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자산위주의 영업전략을 버리지 않고 있어 잠재적 불안 요인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 해결책은 무엇인가 =크레디 쉬스의 김 팀장은 "한국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된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투신사 부실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단호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투신사문제와 관련, "어차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며 "금융권 전체로 악성 종양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공적자금 투입 등 특단의 처방시기를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톰슨뱅크워치의 토머스 고브 선임 부사장은 사견을 전제로 "한국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금융권 등에 대한 개혁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국민 전체의 컨센서스가 모아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처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귀결되는 만큼 적극적인 여론수렴을 통해 시급히 2단계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