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한 벤처캐피털의 자금유치 제안서 겸 계약서에는 다섯가지 투자자 자격조항이 명시돼 있다.

즉 <>개인 순자산이 1백만달러를 초과할 것 <>개인 연수입이 20만달러를 초과하거나 부부 총수입이 30만달러를 넘을 것 <>증권브로커 자격 소지자일 것 <>보험회사일 것 <>투자회사일 것.

이 조건들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이나 벤처기업이 투자를 유치할 때에 빠짐없이 포함된다.

투자자는 이 조항 중 적어도 한 항목에 해당돼야 한다.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이 자금을 유치할 때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서류를 "사모메모록(Private Offering Memorendum)"이라 부른다.

벤처투자는 대중이 아니라 사적으로 걷는 자금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도 아주 익숙해진 용어인 "IPO(Initial Public Offering)"도 상장전 벤처기업의 자금유치가 철저하게 "사적으로(privately)" 이뤄지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가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일부 주에서 허용하는 인터넷공모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 자격조항에서 보듯 아무나 벤처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은퇴연금 운영자,전문투자자 등 프로급의 투자자가 아닌 개인 투자자의 경우 순자산이 1백만달러가 넘는 자,연봉 20만달러가 넘는 자,그렇지 않으면 아예 문자 그대로 모험적인 투자를 하고도 가산을 탕진하지 않을 재력가만 투자하라는 것이다.

왜 "사적"이라는 이야기가 들어갈까.

벤처 펀드는 위험도가 높은 투자인 만큼 미국증권감독원(SEC)은 투자지식이 있는 개인에게만 자금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선 인터넷공모가 거의 "범람"의 지경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싶다.

또 얘기를 들어보면 10억원에서 1원 모자라는 돈은 "뚝딱" 모이는 모양이다.

물론 인터넷 공모를 싸잡아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벤처투자야말로 경제 부활의 1등 공신이며 인터넷 공모가 벤처투자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처가 당위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상 인터넷 공모 광고를 들여다보면 불안한 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투자심사 경험이 있는 필자도 광고에 게재된 내용만으로는 투자를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공시 내용이 빈약하다.

그리고 인터넷 증권 사이트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루머나 억측,그리고 그 억측에 속은 투자자들의 욕설이 난무한다.

가뜩이나 희박한 벤처 기업의 성공률을 상쇄해주는 것은 성공 기업의 엄청난 투자수익률이다.

작년만 해도 실리콘밸리에서는 시드(창업단계)머니로 들어간 벤처기업이 성공하면 20배가 터진다.

10개를 이런 식으로 투자하면 9개가 망하고 1개만 성공해도 1백%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미국 최고의 도박장은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실리콘밸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실감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전문 투자자들의 "고도로 계산된 도박"이라는 점에서 라스베이거스의 블랙잭판과는 다르다.

"묻지마 투자"가 성행하면 타점은 그만큼 낮아진다.

투자한 회사 가운데 1개가 터지기 위해서는 50개,아니 그 이상의 기업에 돈을 쏟아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50개의 창업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개인은 흔치 않을 것이다.

계산은 간단해진다.

"묻지마 투자"의 결과는 손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투자 후,손실이라는 결과에 다다르게 되면 "벤처 투자는 손해만 본다"는 그릇된 등식이 성립돼 벤처 투자 시장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게 필자같이 창업기업을 이끌고 있는 사람의 고민이기도 하다.

거품은 사람이 만든다.

제대로 된 벤처의 평가가치는 거품이 아니다.

"서툰 투자자"들이 뛰어드는 곳에 거품이 있을 뿐인데 "묻지마 투자"가 가져올 벤처 투자 수익률의 저하가 걱정되는 것이다.

창투사가 많이 설립됐다.

새 시대 첨단 기술에 대한 평가력이 없는 투자자들은 창투사를 통해 투자하는 게 마땅하다는 얘기를 다시 한번 하고 싶다.

[ 마이클 김 (주)eStop 대표 mkim@esto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