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잡역부로 일과 씨름하며 지내면서도 여섯 식구들과 차고를 개조한 누옥에서 지내는 과달루페 에레라.

청소부 일 만으로는 살림이 안돼 두가지 아르바이트를 더 얹어 하면서도 세 자녀들과 창도 없는 단칸방에서 사는 로살바 세발로스...

최근 뉴욕 타임스가 샌호제이 발로 소개한 "실리콘 밸리판 어둠의 자식들"의 삶의 모습이다.

하루 평균 30명씩의 SOM(스톡 옵션 백만장자)들을 배출한다는 미국 신경제의 본산인 실리콘 밸리의 한 켠에서 노무자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 생계수준에도 못미치는 시간당 6.5~8달러.

그런 돈을 받으면서 카펫 청소에서부터 화장실 청소,쓰레기 수거 등 갖가지 잡역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이들의 직장은 시스코 시스템즈,선 마이크로 시스템즈,3콤 등 실리콘 밸리에서도 초일류로 꼽히는 유수 기업들이다.

그럴듯한 대학 졸업장만 쥐고 있으면 입사와 동시에 10만달러 이상의 연봉과 그 몇배에 해당하는 스톡 옵션이 보장되는 곳이지만 "힘없고 배경없는" 노무자들에게는 "별나라 얘기"일 뿐이다.

타임스가 묘사한 잡역부들의 생활상은 "비참" 그 자체다.

9명의 어른들이 방 한칸짜리 아파트에서 합숙하고,두 가족 여덟 식구가 작은 트레일러를 개조한 임시 가옥에서 뒹굴며,그런 거처나마 구하지 못한 어느 잡역부는 자기가 일하는 금속 공장의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밤을 보낸다.

창문도 없는 차고에서 생활하는 어느 여성 잡역부는 "가끔씩 내가 교도소에 갇힌 죄수 신세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단다.

이에 대해 관련 회사측에서는 "그들은 우리가 직접 고용한 종업원이 아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해당 용역회사들은 "대기업들로부터 용역을 따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하고,그에 따라 잡역부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게 불가피하다"고 받아 넘긴다.

"한마디로 신경제는 모래시계다. 위쪽에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있고,그 밑에서 수많은 한계 임금의 단순 노무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전미 산업별 노련( AFL-CIO ) 관계자의 탄식을 괜한 지청구로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신경제 잔치판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건 서글프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 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