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수출기지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고맙기 이를데 없지만,글쎄요."

재래시장에 정부가 전례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이 "패션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르자 산업자원부가 의욕적으로 재래시장 육성에 나선 것이다.

산자부는 이곳을 세계의 "패션메카"로 키운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최근 파격적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시장의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전자상거래 기반구축자금(3백억원)과 <>수출업자 운영자금(1백억원)을 저리로 지원한다는게 골자다.

전자상거래 기반구축자금 3백억원은 한국의류진흥센터(의류센터)라는 단체가 지원받는다.

ndN이라는 동.남대문 공동브랜드를 운영하는 이 단체는 또 수출자금 1백억원에 대한 대출집행권한을 갖는다.

이들 자금은 연리 7.5%에 3년거치,5년분할 상환이라는 매우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이곳 시장상인들 대부분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많은 상인들은 "의류센터가 무엇하는 곳이냐"고 반문한다.

상인들은 동.남대문 시장에만 지금 20여개 단체가 있으나 사실 이들 단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류센터에 대해서도 "우리를 대표하는 조직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실제 의류센터측도 가입 회원이 4천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동.남대문 전체 상인 수가 8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걸 감안하면 5% 수준이다.

의류센터가 정부자금을 지원받아 오는 15일 개설할 예정인 인터넷쇼핑몰에 상품을 공급하는 상인도 아직 2백명 수준이다.

의류센터에 대한 이같은 대표성 논란이 빚어지자 산자부는 "동.남대문시장을 수출기지로 육성한다는 정책목표와 부합되는 곳을 찾은 결과 의류센터외에 마땅한 지원대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의류센터측도 앞으로 회원수를 대폭 늘려 명실공히 동.남대문시장 모든 상인을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상인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수출상인에게 정부돈(사실은 국민의 세금)을 빌려줄수 있는 대출심사권을 의류센터측이 독점함으로써 생길수 있는 부작용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간섭수단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한 상인은 "동.남대문 시장은 지금 패션벤처기업의 거대한 전쟁터"라며 "자율과 창의,다양성이 생존의 전제조건인 이곳에 대한 정부의 섣부른 개입은 패션벤처의 본질을 훼손시켜 오히려 경쟁력을 좀먹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산자부의 이번 지원안은 겨우 상인 2백5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국민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바로 이런 "현실감각 결여"의 문제일 것이다.

최철규 기자 gray@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