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화.반월 공단.

봄기운이 완연하다.

햇살이 내리비치는 공장 담벼락 곳곳에 구인광고가 나붙어 있다.

낯설지 않은 공단 풍경이다.

그러나 구인광고에 쓰인 모집기간은 예전과 달라졌다.

"00월 00일까지"가 아니다.

대신 "충원될 때까지" "연중 계속..." 등으로 바뀌었다.

중소기업들의 구인난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전국 공단의 공장가동률은 지난해 여름부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의 시름은 쌓이고 있다.

"지금은 자금난이 아니라 사람난 때문에 큰 일이다. 공장 돌릴 사람이 없어 주문이 들어와도 감당을 못한다"

시화공단에 입주해 있는 S기계 K사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고질적인 3D업종 기피 증후군에다 벤처열병 때문에 제조 중소기업들은 일손에 목 말라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제조업 공동화가 현실화되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 공단을 떠나는 사람들 =인천의 남동공단.

중소기업 전용 공단인 이곳은 1년 내내 사람이 없어 아우성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 경인지역본부 남동지원처의 황호림 경영지원팀 과장은 "지난 한햇동안 센터에 접수된 구인자수는 1천7백2명, 구직자 수는 1천4백53명으로 구인자 대 구직자 비율이 1대 0.85였다"며 "그러나 올들어선 그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월중 구인자와 구직자수는 각각 1백41명, 91명으로 구인 대 구직자 비율이 1대 0.64을 나타냈다.

특히 젊은 사람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요즘 제조업체에서 일하려는 젊은이들이 어디 있나. 있던 사람도 떠나는 판인데..."

산단공 남동지원처의 이종문 부장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중 20~30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요즘엔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 힘들게 공장에서 평생을 보내는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H금속 L사장)

더구나 기존 직원들 중에서도 실력있는 기술자들은 벤처나 대기업으로 떠날 궁리만 한다.

"벤처기업으로 옮겨 일확천금의 성공을 꿈꾸는 엔지니어가 한둘이 아니다. 벤처열풍으로 들뜬 사회 분위기가 그들을 공장에서 내몰고 있다"(산단공 서부지역본부 박우근 부장)

<> 공단은 가동돼야 =PC 부품을 조립하는 남동공단의 G사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업무 특성상 빠르고 섬세한 조립이 요구된다.

그래서 젊은 여성 근로자를 썼으면 좋겠는데 현실에선 어림도 없는 욕심이기 때문.

공단에선 젊은 생산직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귀가 멍멍해지는 소음 공장에서 하루종일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싶지 않은건 당연하지 않나"(K전기 O양)

급여나 근무환경도 서비스업종이 훨씬 낫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요구 조건이 높아 사람 데려오기가 정말 쉽지 않다. 간신히 모셔오면(?) 2~3일 나오다 그만 두는 사람이 많다"(K화학 J상무)

이 회사는 6개월동안 20여명을 뽑았지만 그 사이 10명 정도가 공장을 떠났다.

대안으로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쓰기도 했지만 숙식제공 비용과 언어소통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화.반월공단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내내 구인수(1천1백1명)가 구직수(1천4백29명)보다 적었지만 올해 역전됐다.

지난 1월 구인수는 2백73명으로 구직수 2백27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결국 반월의 G금속은 묘안으로 공고 교사들을 설득해 학생들을 실습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실습 기간이 끝나면 정식 사원으로 받아들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 한명도 남지 않았다.

이런식이다 보니 흰 머리가 희끗한 기술자들만이 공장을 지키고 있다.

"몇 십년 동안 축적해 온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젊은이들이 없으니 산업기반 자체가 붕괴될까 두렵다"(기협중앙회 조유현 정책총괄팀장)

<> 대책은 없나 =공단의 중소기업 사장들도 현실을 인정한다.

급여와 대우를 낫게 해주면 사람이 온다는걸 안다.

하지만 제조 중소기업 입장에선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뾰족한 방법이 없다.

부족한 인력으로 간신히 버티다 보니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인력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외국인산업연수생 확대를 지원하고 산업기능 요원들을 중소기업에 많이 배정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개발 분야의 고급인력에 대해선 채용지원과 함께 장기적인 교육.연수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 미봉책으로 중소기업들의 구인난을 풀어주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서욱진 기자 venture@k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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