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는 23일 본사에서 "기아 새출발 새도약 선포식"을 가졌다.

3백여명의 임직원이 참석해 법정관리 탈출 이후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기아는 또 이날 주요 일간지에 축하 광고를 실었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본 일부 소액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대통령님 고맙습니다"로 시작되는 문안이 지나치게 정치적인데다 주주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인사말도 없다는 불평이었다.

소액주주들은 자신들이 기아정상화의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지난해 두차례의 대규모 증자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기아의 행태는 주주 경시풍조의 전형이라는 시각이다.

물론 기아가 주주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벗어났으니 고마움을 표시할 데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아는 하필이면 청와대 문양까지 사용하고 직원들이 일제히 한
곳을 우러러보는 사진을 실어가면서 "경축 대통령취임 2주년" 광고를 실어야
했을까.

그것도 주총과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인 것을 뻔히 알면서.

기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른 기업들도 25일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축하광고를 내보낼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거 정권부터 관례적으로 해온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민간기업들이 이런 식의 인사(?)를 해야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면 단지 기업만 탓해야 할까.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과거처럼 특정기업의 운명을 정부가 좌지우지
하는 그런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왜 과거처럼 하는지 권력을 쥔 측에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모그룹 관계자는 "아직도 대통령 취임 경축에 가만히 있으면 뭔가 불편하다"
는 눈치보기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법정관리 탈피와 대통령 취임축하를 연결시키는 발상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입버릇처럼 "글로벌스탠더드"를 외치지만 아직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론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 조일훈 산업부 기자 ji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