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시장이 기업의 하느님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은 17일 전경련
정기총회가 끝난 직후 이어진 오찬강연에서 "시장 하느님론"을 주창했다.

좌 원장은 "IMF(국제통화기금)관리 이전에는 기업들이 정부를 하느님으로
섬겼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받들어야 하는 하느님은 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와 주주,
채권단 등 세 분"이라며 "기업이나 정부가 모두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 원장은 특히 "정부가 좋지 않은 정책으로 기업을 망하게 할 수는 있지만
기업을 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의 훼방꾼은 될수 있지만 수호천사는 될 수 없다는 취지로
정부의 역할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

그는 기업들이 이제 정부가 아닌 스테이크 홀더(Stake Holder, 이해관계자)
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좌 원장은 이같은 "시장 하느님론"을 꺼내면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계셨으면 드릴려고 했던 말씀인데"라고 부드럽게 정부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이헌재 장관은 이날 전경련 총회에 참석, 초반에 격려사를 한 뒤 곧바로
퇴장했기 때문이다.

좌 원장은 이 장관 면전에서 자신의 "시장 하느님론"을 펼치지 못해서
아쉬운 듯 강연 중간에도 서너차례 "이 장관이 계셨으면 말하려고 했는데"
라고 말했다.

대조적으로 이 장관은 격려사에서 기업들의 경영혁신이 부족하다며 재벌
행태를 IMF체제를 부른 원인의 하나로 지적한 뒤였다.

이 장관은 "전경련 회원사들이 개발시대를 주도해온 성장의 원동력이었으나
기업문화와 경영형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져 왔다"며 재벌의
공과를 평가했다.

이 장관의 이런 기념사를 불과 몇 십분 전에 들었던 3백여명의 전경련 총회
참석자들은 좌 원장의 "시장 하느님론"을 들으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좌 원장이 이날 강연내용으로 잡은 제목은 "최근 한국경제의 상황".

그는 주제에 맞게 최근 환율 금리 무역 등에 관해 말한 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시장 하느님론"을 펼쳤다.

전경련 총회를 마치고 행사장을 나서는 참석자들은 대부분 정부가 기업의
훼방꾼은 될 지 언정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란
좌 원장의 발언취지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 정구학 산업부 기자 cg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