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1천1백20원대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원화가치 움직임이 11일
부터 갑자기 달라졌다.

1월에 이어 2월에도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악재가 있지만
원화가치는 가파른 오름세다.

이 추세라면 1천1백원선도 위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외환당국이 원화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원화가치 상승은 외국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최근들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하루평균 2억달러씩 외환시장에 공급
되면서 원화절상 기대 심리를 다시 만들어 놓았다.

11일에는 역외 NDF(차액결제선물환) 시장의 환투기 세력까지 가세했다.

역외 NDF 세력들은 올들어 원화거래를 꺼려 왔었다.

당국의 강력한 방어로 원화절상 추세가 주춤해지자 한발 뺐던 것이다.

그러나 NDF 세력들은 이날 2억5천만달러 규모를 내다팔면서 원화절상을
가속화했다.

이는 외환당국이 달러당 1천1백20원대 방어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유포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NDF 세력들은 그동안 원화가치가 달러당 30원 내지 50원 가량 올라갈 수
있다고 판단됐을 때 달러화를 대량으로 팔아치우는 행태를 보여 왔다.

외국인들의 달러화매도 기세가 등등하지만 달러화 수요는 특별히 발견되지
않는다.

이창훈 외환은행 과장은 "달러화 수요요인으로는 수입결제를 위한 달러화
매입 정도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성진 씨티은행 지배인은 "외국인 주식자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환율
조정밖에 없어 보인다"며 "원화가치가 단기적으로 1천1백원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성희 체이스맨해튼 은행 지배인도 "절상을 용인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그러나 경상요인이 아니라 자본요인에 의해 원화가치가 오르고
있는 것이어서 당국이 관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원화절상 용인설과 관련,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국인 자금이 집중되고 있는
마당에 원화가치를 일정 수준에 묶어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
했다.

그러나 그는 "(환투기세력들과 싸울) 임전태세는 돼있다"고 덧붙였다.

원화강세는 엔화약세와 맞물려 기업들의 수출채산성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가전과 조선부문이 울상을 짖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원고.엔저 현상이 지속된다면 평면 디스플레이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서 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유럽
시장에서 고전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