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에 있는 이앤테크의 박세준 사장실은 특이하다.

다섯평 남짓한 방은 대나무와 호랑이그림이 장식하고 있다.

책상위에는 붓과 먹 등 문방사우가 놓여있다.

또 다른 책상에는 음식물쓰레기를 이용한 퇴비제조장치 설계도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작동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

고색창연한 동양화와 기계설계도 인터넷까지 동원되는 첨단 제품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모두 박 사장이 손수 만든 작품이라는 것.

그는 67건의 지식재산권을 출원한 기업인이다.

선글라스를 고정시킬 수 있는 모자, 지도책에 달 수 있는 나침판도
만들어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그가 어떻게 그 많은 발명을 할 수 있었을까.

사업의 뿌리는 서예와 그림.

이를 팔기 위해 전국을 누비다가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는 지도를
만들었고 지리정보시스템 분야까지 진출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주다가 도자기공장에서 나오는 폐수슬러지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자동공압펌프를 개발했다.

이를 활용해 음식물쓰레기 퇴비화장치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네번 쓰러졌고 다섯번 일어났다.

단칸 셋방에서 네식구가 살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했다.

많은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경험과 타고난 관찰력이 밑천이
됐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력과 학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발명은 껍질을 깨는 작업.

고학력자는 전공의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박 사장의 분석
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규정한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엄청난 사색과 독서를 하기도 했다.

사오정전화기로 돈방석에 오른 지영천 YTC텔레콤 사장은 약사 출신.

밤마다 주정하는 취객들의 등쌀에 못이겨 약국문을 닫고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었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두손을 대지 않은 채 받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초소형전화기를 개발했다.

이 제품으로 지난해 8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백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박 사장과 지 사장의 공통점은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들뿐 아니라 부드러운 생각을 지닌 중소기업인이 많다.

김삼식 대해프랜트 사장과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사장도 비슷하다.

김 사장은 마도로스 출신.

외항선을 몰았던 그는 배를 오래 타는 것이 가정을 위해 좋지 않다고 판단
했다.

뭍에 상륙한 뒤 선상 생활에서 익힌 보일러분야의 일을 하다가 소각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병원용 적출물소각로 동물사체소각로 등으로 사업영역을 늘렸고 시장도
태국 등 해외로 급속히 넓혀가고 있다.

권기찬 사장 역시 건설분야의 일을 하다가 수입의류사업에 손을 댔고 이제는
독특한 손톱액세서리로 해외업체들의 주목을 받는 기업인이 됐다.

학력이나 전공을 뛰어넘는 유연한 사고는 중소기업의 자양분이자 최대 무기.

아울러 중요한 것은 여기서 도출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겠다는 용기다.

합리성만 따지면 할 수 없는 게 사업이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다.

합리적인 사고만을 고집했다면 모세는 홍해를 결코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