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까지 벤처기업 4만개, 고용인원 1백20만명, GNP비중 18%.

24일 대통령이 주재한 "새천년 벤처인과의 만남"에서 밝힌 정부의 비전이다.

2001년까지 2만개라고 발표한 게 엊그제인데 4만개라니...

이처럼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숫자에 뚜렷한 근거는 없다.

지난해말 현재 벤처기업수는 5천개에 육박했다.

그중 상당수는 그동안 중소기업으로 운영되던 회사들이 벤처기업으로 간판을
갈아 단 것이다.

지난해 벤처기업이 급증했다고 해서 모두 새로 창업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벤처정책의 주무기관인 중소기업청 관계자조차 "내년말까지 2만개로 벤처
기업이 늘어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마당에 김영호 산업자원부장관은 5년 뒤에 벤처기업수를 4만개로
늘리겠다고 호언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한 벤처진흥정책은 누가 뭐래도 경기회복과
고용창출에 일등공신이다.

또 기업가정신을 고양시켰고 이를 통해 경제권력의 이동이 일어났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데도 한몫 한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벤처 흑묘백묘론"이 횡행하고 있다.

고용창출만 한다면 벤처가 검든 희든 관계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장에선 "모럴 해저드"가 극심하다.

중소기업정책과 벤처기업정책을 혼동한 정부정책에 편승해 정책자금 따먹기
추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벤처기업인은 주가를 끌어올리고 빠지는 투기꾼노릇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사업으로 번 돈을 가지고 문어발 확장에 열중인 벤처기업인도 나타나고
있다.

적잖은 벤처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해 매출을 올리기보다 코스닥에 등록,
기업가치를 부풀리는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무늬만 벤처"들이 양산되고 있다.

경제정책적으로 더 심각한 것은 벤처가 고용창출에는 유용하지만 경제성장
에도 유용한지는 아직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런던경영대학원 벤처연구소보고서)

그런데도 국가운명을 벤처에 걸기나 한듯 많은 사람들이 "벤처 앞으로"다.

묻지마 투자자만 "블라인드 베팅"을 치는 게 아니라 정책당국도 같은
모습이다.

벤처드라이브정책이 "벤처투기자본주의"로 변질될까 걱정스럽다.

또 벤처성공신화가 상대적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크다.

뼈빠지게 일해봐야 벌이가 시원찮은 사람들에게 벤처벼락부자는 선망의
대상이라기보다 원망의 표적이 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민.관이 모두 들뜬 벤처열풍에 속도조절이 필요한 건 이래서다.

< 안상욱 산업2부 기자 sangwoo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