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게임업체 넥슨(대표 이민교).

그래픽머드게임 "바람의 나라"로 유명한 이 회사엔 "야행성" 젊은이들이
밤늦게 남아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열심히 놀리고 있다.

조금 전 몇몇 직원들이 시켜먹은 자장면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작업실.

야식시간을 놓친 직원들은 컵라면 그릇에 젓가락을 넣고 면발을 말아올린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쏠려있다.

헤드폰을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진상훈(25)씨 옆에는 SF 무협 코믹물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이 쌓여있다.

세계 각국의 신화와 민속신앙, 고대 역사와 철학에 관련된 책들은 벽 한 켠
에 마련된 책장에 즐비하게 꽂혀 있다.

피곤한 모양인지 한 여자 직원은 책상밑에서 이불을 코까지 뒤짚어 쓴 채
누워있다.

사흘째 밤을 새워가며 게임캐릭터 디자인을 한 김정현(23)씨는 "건물 옥상에
따로 마련된 침실보단 컴퓨터가 있는 책상 밑이 편하다"며 다시 잠을 청했다.

사무실 구석에 놓여 있는 "노젓기" 운동기구에 올라 타 열심히 땀을 내고
있는 박원용(25)씨.

달밤(?)에 체조하는 이유에 대해 "체력유지도 하고 잠도 쫓을 겸해서"라고
간단히 말한다.

"바람의 나라"의 게임마스터인 김경률(21)씨는 숭실대 컴퓨터공학과
2학년생.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지금까지 회사에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단다.

밤엔 야전침대나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가며 일하는 누나들이, 아침엔
사무실 옆에 마련된 샤워실에서 머리를 툭툭 털고 나오는 형들이 사무실을
항시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넥슨은 한국 온라인 게임시장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대표적인 게임업체다.

"바람의 나라"영문판인 "넥서스"는 하루평균 1천여명이 동시접속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엔 일어 불어 버전도 완성해 세계시장 진출을 공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사무실 구석엔 사람 허리까지 오는 대형 여행용 트렁크
3~4개가 놓여있다.

전체 1백20명 직원의 평균연령은 25세.

절반가량이 대학생이다.

"팔팔한" 신세대 군단인 넥슨 직원들은 고졸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학위 취득자, 외환딜러 등 학력과 경력도 가지각색.

직원들끼리는 서로를 특이한 고유명사로 부른다.

"소마" "띵" "주유소" "긴가민가" 등이 그것.

이런 별명중 몇몇은 실제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책상 칸막이가 유난히 낮은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직원끼리 벽을 허무는
노력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대표적인 예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

아이디어나 공지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을 이용한다.

하루라도 이메일 확인을 안하면 2백~3백통의 메일이 금새 쌓일 정도.

12개 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주는 넥슨의 기업문화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기는 닥스클럽(대표 류제천) 사원들도 마찬가지.

인터넷 결혼정보 서비스 제공업체인 이 회사 직원들은 지난번 마케팅팀과
회원관리부 직원들이 단체로 병원 신세를 졌다.

계속되는 밤샘근무와 자발적으로 주말 업무를 자청한 탓에 나온 결과.

결국 회사에선 빌딩 지하 3층에 있는 헬스장에서 직원들이 건강관리에 신경
쓸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새벽 6시께 미진휘트니스에는 20여명 가량의 닥스클럽 직원들이 체력관리에
힘쓰고 있었다.

운동시간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닥스클럽 직원들은 "점심시간 이벤트"를 o
기획하는 등 시간을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한다.

테헤란 밸리에 위치한 각 벤처기업 직원들을 주 타깃으로 한 "런치미팅"이
그것.

인터넷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된 미혼남녀들이 오프라인 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점심시간에 미팅을 주선하는 것.

사이버매칭 팀장인 배혜란 대리는 "테헤란 밸리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디지털
미팅 모임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이방실 기자 smil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