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황제"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박태준
내각의 경제팀 좌장으로 올라섰다.

지난 79년 재정금융심의관(부이사관)으로 옛 재무부를 떠난지 21년만에
장관으로서 친정집에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옛 재무부 과장시절 장관급 과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특한
개성과 강한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서울대 수석합격과 행정고시 수석합격으로 "천재 관료"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70년대말 "율산 사건" 여파로 불명예스럽게 관직을 떠났다.

그때부터 (주)대우 기획조정실 상무, 대우반도체(주) 전무, 한국신용평가
사장, 증권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조세연구원 자문위원 등으로 떠돌았다.

권토중래의 꿈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뤄졌다.

옛 재무부 시절 장관으로 모시던 김용환 의원의 추천으로 새 정부 출범전
구성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을 맡은 후 금융감독위원장겸
금융감독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부총리로 격상되는 재경장관으로 임명돼 "명예"까지 얻게 됐다.

이 장관은 시장이 신뢰하는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부실금융회사와 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경영진을 감옥에 보내는 "악역"을 도맡았다.

한때 몸담기도 했던 재벌과 마주할 때도 원칙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다는
평이다.

서근우 금감위 심의관은 "악을 쓰고 물고 늘어지는 특유의 기질을 발휘할
때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신관치"를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비교적 잘했다는 금융개혁도 이 장관의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64조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절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개혁을 그 만큼 잘 할 수 없었다고 본다"(박종익
손해보험협회장)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이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전에 잘 알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선거때 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캠프에 몸을 걸치고 있다.

비대위에 참여하면서 김 대통령이 그의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원장으로서 추진한 개혁에 대해서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줬다는 후문
이다.

그러나 이 장관이 경제부처의 수장으로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재경부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릴 수 있었던 금감위같은 신생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신임부총리가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개혁성향의 사람, 기동성,
우호적인 경제환경 등 세 요소를 재경부에서 똑같이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경부가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을 맞아 과거 재경원처럼 부총리
부처라는 간판을 내세워 또다시 공룡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자신의 말처럼 "금융만 해온 사람"이 훨씬 넓은 분야를 다루는 재경부를
제대로 통할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경제에 많은 관심을 갖는 김대중 대통령, 경제계에
몸담았던 박태준 총리라는 "감독"을 두고 있는 것도 이 장관으로선 부담스런
대목이다.

그러나 그가 정부 안팎을 모두 볼 줄 아는 인물인데다 여러 역경을 딛고
무난히 개혁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우려보다 기대가 훨씬 큰 편이다.

< 허귀식 기자 windo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