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포럼 월례토론회.

과학계 인사 20여명이 모인 이 자리의 주요 이슈는 과학자들의 "실력행사"에
관한 것이었다.

"5백만 과학자들끼리 뭉치질 않고 있다.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과학정보
기술인협회를 구성해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라는 공식적인 로비기관이 있다. 새로운
단체를 만들면 그나마 있던 힘도 다 흩어지고 만다"

"과총은 정부에서 돈을 받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대변하기
힘들다. 과학기술을 생각하는 시민연대를 발족시켜야 한다"

"과학기술은 국가 안보와 관계된 것이다. 정치판이나 밥그릇 싸움에
휘말려선 안된다"

여러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한국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자들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선 과학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압력단체"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토론회를 주재하던 사회자는 그러나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만 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포럼을 마무리지었다.

과학기술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지만 대학입시 특차전형에서 자연계
학과는 정원미달과의 단골손님이 됐다는 한탄과 함께.

결국 머리로는 과학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가슴으로는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라는 말이다.

한 과학계 원로는 "한국 사회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봐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해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경제 논리"만
내세운 탓에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가치관이나 문화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국보급 문화재인 에밀레종은 금속공학적 기술의 우수성도 뛰어나지만 예술적
가치 또한 일품이다.

고려청자가 불교정신을 승화한 것이라면 조선백자는 유교적인 색채를
대변하는 과학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초가집 토담벽은 4계절 변화에 맞춰 보온.방풍효과를 발휘하는 생활속의
산 기술이다.

지금은 한국 고유의 문화속에 과학기술을 함께 녹여낸 "과학기술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

과학기술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주입"하기만 해선 이 날의 논쟁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므로.

< 이방실 산업2부 기자 smil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