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이 미국계 투자회사인 뉴브리지캐피털로 경영권이 넘어가고 은행장
마저 미국 금융회사 수석부사장을 지낸 일본계 미국인 윌프레드 호리씨가
선임됨에 따라 국내에서 본격적인 "외국은행시대"가 열리게 됐다.

외국은행과의 경쟁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은행들은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은행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 제일은행 경영전략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의 지분 51%를 확보,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중소기업과 소매금융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호리씨를 은행장으로 선임, 앞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 분야는 국내의 대부분 은행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호리 행장내정자는 기자회견에서 "기업고객과 개인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러종류의 신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 익힌 신상품들을 도입,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또 "건전한 여신정책으로 재무건전성을 향상시키겠다"고 덧붙였다.

기업여신을 보수적으로 운용, 은행자산을 건전하게 만드는데 주력함에
따라 부채비율이 높거나 수익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돈을 빌리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제일은행 경영진 구성 =뉴브리지캐피털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와
집행최고기관인 은행장을 분리했다.

이사회 의장에는 도산위기에 빠져 있던 아메리칸세이빙은행을 회생시킨
경험이 있는 로버트 바넘 전 은행장을 영입했다.

부의장에는 통상산업부장관과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차장을 역임한 김철수
현 세종대교수를 선임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은행경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주요 임원들을 외국
금융전문가로 채울 계획이다.

재무전략이나 여신정책 상품개발 등 주요분야에 외국인을 영입하기로 했다.

이들은 호리 내정자와 함께 제일은행의 주요 경영진을 구성하게 된다.

나머지 일부 집행임원은 은행 내부에서 선임될 전망이다.

49%의 지분을 갖는 정부는 사외이사 3명과 감사위원을 선임한다.

<> 다른 은행에 미칠 영향 =제일은행은 10월말 기준 점포수가 3백36개,
총자산이 32조8천여억원에 이르는 대형 시중은행이다.

전국적인 점포망을 갖춘 제일은행이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신상품을
개발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경우 국내 은행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한빛 외환 조흥 등 대형시중은행과 국민 주택 등 소매금융에 강점이
있는 은행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제일은행이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 금융상품을 쏟아낼 경우 다른 은행들도
이같은 방식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제일은행은 부실자산을 모두 털어버리고 새출발한다는 점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른 고정이하 부실여신과 일부
자회사지분, 출자주식, 뉴욕지점의 자산과 부채, 일부 업무상 불필요한
자산을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부실여신은 예금보험공사가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에 제일은행은 대손충당금
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없다.

반면 국내은행들은 대우여신 등을 포함한 무수익자산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자기자본비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 부채상환을 독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부실여신을 정리하는데 많은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국내은행들이 외국은행인 제일은행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
했다.

씨티은행이나 HSBC 등 다른 외국은행들도 국내영업을 적극적으로 늘려 나갈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은 서울 등 일부지역에 포진해있는 지점을 늘리고 신용카드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한다는 영업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은행 인수에 실패한 HSBC도 점포확대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현승윤 기자 hyuns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