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이 미국계 투자회사인 뉴브리지캐피털로 경영권이 넘어가고 은행장
마저 미국계 일본인인 알프레드 호리 AFC 수석부사장이 선임됨에 따라 국내
에서 본격적인 "외국은행시대"가 열리게 됐다.

소유지분 뿐만 아니라 경영방식도 철저히 외국은행의 기법을 도입하는 첫
대형 시중은행이 국내에 탄생한 것이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제일은행 지분중
51%를 확보,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에 선진금융기법을 도입, 외국은행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영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선진금융을 익힌 호리 신임행장을 선임한데 이어 재무
전략 여신정책 상품개발 등 주요분야에 외국금융 전문가를 임원으로 영입
하기로 했다.

소유구조 뿐만 아니라 은행경영마저 외국인이 장악하는 셈이다.

제일은행은 10월말 기준 점포수가 3백36개, 총자산이 32조8천여억원에
이르는 대형 시중은행이다.

씨티은행이나 HSBC 등이 한국에 10여개 안팎의 점포를 두고 운영하던 것
과는 규모면에서 다르다.

전국적인 점포망을 갖춘 외국은행인 제일은행이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신상품을 개발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경우 국내은행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중소기업과 소매금융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호리씨를 은행장으로 선임, 앞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 분야는 국내의 대부분 은행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외국은행인 제일은행의 가세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호리 신임행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기업고객과 개인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러종류의 신상품을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 익힌 신상품들을 도입,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가겠다는 경영전략이다.

제일은행이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 금융상품을 쏟아낼 경우 국내 금융기관들
도 이같은 방식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이 한바탕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외국은행으로 재탄생하는 제일은행은 부실자산을 모두 털어버리고 새출발
한다는 점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른 고정이하 부실여신과 일부
자회사 지분, 출자주식, 뉴욕지점의 자산과 부채, 일부 업무상 불필요한
자산을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또 나머지 잔류 여신에 대해서는 은행 매각후 앞으로 2년동안, 부도가
발생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이를 매입하는 옵션도 갖게 됐다.

워크아웃 여신과 금융기관 여신의 경우 3년간 옵션이 보장된다.

완전한 클린(Clean)은행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없다.

반면 국내은행들은 대우여신 등을 포함한 무수익자산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을 수 밖에 없다.

자기자본비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 부채상환을 독촉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은행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부실여신을 정리하는데 많은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국내은행들이 외국은행인 제일은행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
했다.

씨티은행이나 HSBC 등 다른 외국은행들이 제일은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국내 영업을 적극적으로 늘려 나갈 것이라는 점도 국내 금융기관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씨티은행은 서울 등 일부지역에 포진해있는 지점을 늘리고 신용카드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한다는 영업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은행 인수에 실패한 HSBC도 점포확대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금융기관들이 지분참여하고 있는 외환은행이나 국민은행들도 새로운
금융기법을 확대하고 있어 국내금융산업은 앞으로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 현승윤 기자 hyuns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