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의 주원료인 향료용 장미는 불가리아산을 최고로 친다.

장미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들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80년대에는 세계 시장점유율이 70%를
웃돌았다.

그러나 불가리아에는 정작 내세울만한 향수브랜드가 없다.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와 같은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에 원료를 납품하거나
하청생산하는게 전부다.

향수로 재미를 보는 나라는 단연 프랑스다.

샤넬 No5, 쁘아종, 랑콤..

향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품들은 대부분 프랑스산이다.

이들은 "좋은 향기"외에 프랑스 특유의 고급스런 문화 이미지를 업고 있다.

사람들은 그 "문화 이미지"에 아낌없이 비싼 값을 지불한다.

소비자들을 더이상 1원의 가격변동에 수요를 달리하는 "경제적 인간
(economic man)"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비자들은 상품의 기능뿐아니라 그 안에 녹아있는 의미와 이미지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상품의 이미지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뿌리가 바로 "문화"다.

문화가 국가나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매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문화 마케팅"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기업과 상품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국문화는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을 세계적인 스탠더드로
만들며 세계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미국상품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일본 혼다가 80년대 중반 프랑스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미리 진출해
있던 애니메이션 잡지 영화같은 문화상품들의 지원사격이 큰 보탬이 됐다는게
정설이다.

자국문화이외에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를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많다.

영국의 스킨케어 제품 회사인 바디샵은 80년대 후반 "환경친화"라는
새로운 문화를 마케팅의 키워드로 삼았다.

제품라인을 오이 클렌징, 김 삼푸 등 자연친화적인 방향으로 바꿨다.

광고도 제품 홍보대신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호하자거나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캠페인으로 대체했다.

환경사랑을 내세운 문화마케팅은 바디샵을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올려
놓았다.

베네통역시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인종.문화를 뛰어넘는 인류애"라는 문화적
기치를 내건 마케팅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수출로는 한계에 부딪힌지 오래다.

프랑스의 석학 기소르망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국상품의 최대
약점은 이미지가 없는 것"이라면서 "상품에 문화의 이미지를 담아서 파는
것이 중요한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가 경제발전의 엔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서구사회가 "아시아적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 하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은 중국의 고전을 소재로 했다.

불교나 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양사회에서 뽑아낼 소재가 고갈되면서 동양문화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 김휴종 수석연구원).

"우리문화"에서 경쟁력을 찾을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넓어지는 셈이다.

성균관대 경영학부 유필화 교수는 "차별적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고 이를 세련되게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화 마케팅을 위한 국가차원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샤넬이 패션쇼 한번 치르는데 1백만달러가 넘게 쓸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하네모리의 패션쇼 30~40만달러중 뒷받침해
준다. 우리나라도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과
마케팅 노력이 필요하다"(한양대 경영학부 홍성태 교수).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