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고사위기에 처한 은행의 신탁을 살리기에 나섰다.

은행들의 숙원사업인 퇴직신탁을 허용하고 주식운용제한을 완화(30%->50%)
하며 정크본드펀드(후순위담보채펀드)도 투신사와 같이 팔수 있도록 허용
했다.

이번 조치로 은행들은 신탁상품의 고객이탈을 막고 신규수요 개발, 부실자산
정리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은행신탁은 지난 7월 대우사태이후 투신문제에 밀려 제때 손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자금이탈이 갈수록 심해져 회사채 매입이나 대출여력이 위축되고
만기여신을 회수하게 돼 금융시장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떠올랐다.

신탁 수신고는 97년 1백99조원에서 작년말 1백58조원, 올 8월엔 1백35조원
으로 줄어든데 이어 지난달 15일 현재 1백28조5천억원 감소했다.

약 2년간 70조원(35%)이 빠져 나간 셈이다.

신탁이 이처럼 위축된 것은 증시로 돈이 몰리고 확정금리상품인 개발신탁의
신규판매가 금지된 탓이다.

은행들은 그동안 신탁상품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만기단축(최단 1년->
6개월) <>퇴직신탁 등 신상품 허용 <>주식편입비율 확대(30%->70%) <>신탁
부실을 은행계정으로 매입 허용 등으로 건의해 왔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급한 것을 들어준 셈이다.

여기엔 내년부턴 은행계정과 신탁계정을 분리해야 하므로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다.

은행들은 우선 내년 3월부터 취급할 수 있게돼 총 50조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퇴직금시장을 놓고 보험사들과 한판 승부를 벌일 전망이다.

보험사들은 퇴직보험(종업원퇴직보험 포함) 16조원을 끌어모았다.

종퇴보험이 내년 9월부터 속속 만기가 도래하므로 은행과 보험사간에 만기
자금 유치전이 예상된다.

은행들은 공신력, 운용능력 등에서 보험사들에 뒤질게 없으므로 신탁상품의
새로운 돈줄로 퇴직신탁에 기대를 건다.

이와함께 금감원이 퇴직신탁의 수탁자를 종업원으로 지정토록 한 점도
주목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주가 종업원들의 퇴직금을 퇴직신탁에 맡겨도 이를 담보로
마음대로 돈을 끌어쓰기 어려워진다.

종업원들은 회사가 부도가 나도 퇴직금을 못받을 위험이 사라진다.

심의영 금감원 신탁업무과장은 "내년 노사협상에서 노동조합이 기업주에게
퇴직신탁 가입을 강하게 요구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투신사에는 퇴직펀드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은행에는 신탁상품의
만기단축을 불허했다.

최장봉 금감원 부원장보는 "은행신탁과 투신펀드를 차별화하기 위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신탁은 가급적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상품으로 개발하고 투신펀드는 장.단기
상품으로 유가증권의 간접투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신탁상품을 다양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하지만 그만큼 상품 개발능력에 따라 은행간 우열이 갈라질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 금감원의 분석이다.

주식편입비율이 50%로 높아짐에 따라 증시가 호황일때 투신사로만 돈이
몰리는 것을 구경만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도 주식을 30%까지 운용하는 단위형금전신탁으로 재미를 본 경험이
있다.

또 신탁상품을 단위형, 추가형, 세금우대형 등으로 다양하게 조합할수
있게돼 지금처럼 획일적인 신탁상품 체계에서도 벗어날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재 신탁상품은 은행마다 이름만 다를뿐 은행수(17개)보다도 적은
11~1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와함께 정크본드펀드는 은행들이 신탁에 편입된 부실자산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금감원은 예상하고 있다.

국민 외환 등 대형은행들은 신탁 부실을 ABS(자산유동화증권)로 유동화해
털어내고 있다.

이때 ABS의 선순위채권은 투자적격이므로 소화가 쉬운 반면 위험이 많은
후순위채권은 팔곳이 없어 그대로 은행이 떠안아야 했다.

이를 하이일드펀드보다 더 고위험고수익인 정크본드펀드로 소화하면 상당한
유동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 오형규 기자 o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