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엔 지금 "제 몫 챙기기"라는 망령이 되살아 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선지 만 2년, 우리는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경제 회생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어렵게 이룩한 "한국 재생"이 노사불안으로 인해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조짐이 엿보인다.

노사가 맞서고 있는 표면적 쟁점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여부"다.

보다 근본적으론 "이제 경제도 살았으니 좀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노동계와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시기가 아니다"라는 재계간 시각 차이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여성계 교육계 등 각종 이익단체들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IMF사태 이전 고비용 구조로 회귀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멕시코를 비롯 외환위기를 겪었던 많은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들 국가는 외환위기후 잠시 반짝 경기를 향유하다 재차 긴 고통의 나락
으로 빠져들었다.

한국 경제에 적신호를 보내는 근원지는 기아자동차, 한보철강 사태를 정치
이슈화하면서 IMF 긴급구제금융을 받는 한 원인을 제공했던 정치권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노조전임자에 임금 지급을 허용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 노사간 거센 논쟁에 불을 당겼다.

수많은 개혁입법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내년도 예산안 심의도 법정기한
을 넘겨 버린채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내년 봄 총선에서 노동계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보자는 심사다.

당연히 노동계와 재계가 강력한 찬반의사를 표시하고 나섰고 파문은
노사간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계는 지난 3일 경제 5단체 상근부회장 모임을 갖았다.

이 자리에서 주요 노사문제를 노동계 사용자 정치권 등 3자가 참여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처리한다는데 합의해 놓고도 정치권이 앞장서 이를
깨뜨리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수 없다고 선언했다.

"필요하다면" 정치적 활동도 불사하겠다는 배수진도 밝혔다.

노동계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불 쟁취를 내걸고 이번주부터 겨울투쟁(동투)
에 나설 계획이다.

실력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처벌토록 한 현행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고 전면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대규모 집회도 계획하고 있으며 정부와 사용자측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이달말께 총파업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나아가 한국전력 해외분할매각 반대등 기업 구조조정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가 노동관계법 개정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97년 찾아온 경제위기를 불행한 일이지만 오히려
기회일수도 있다고 보았다.

한국 경제의 고질적 병폐였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치유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사실 고비용 저효율 구조 정착으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하락해 생긴 결과였다.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상승률, 높은 금리, 기업하기에 너무도 비싼 땅값과
사회간접자본 시설 등은 한국 경제를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국으로 전락
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금융기관들의 자금 회수는 곧바로 국가적 위기로
이어졌다.

IMF 관리체제 이후 2년간 고비용 저효율 체제는 시정되는 듯했다.

금리는 한자리수로 낮아졌으며 임금수준과 부동산 가격도 안정됐다.

기업들은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한국 경제 재건을 앞당겼다.

그러나 지금 다시 한국 경제는 도약이냐 좌절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내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게 분명하다.

이 "자기이익 챙기기"란 망령을 없애지 않고서는 한국 경제 앞엔 위기의
반복이 기다릴 뿐이다.

진정한 위기 극복에는 조금씩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각 경제주체들의 고통
분담 의지가 필요하다.

실력행사가 아니라 당초 약속대로 노사정위원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
을 찾아야 한다.

또 정치권은 선량한 대리인의 의무를 다해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고 리더십
을 회복해야 한다.

뉴 밀레니엄 청사진과 국가 전략을 마련하고 앞서 뛰고 있는 우리 경쟁국들
을 돌아보자.

< 최필규 산업1부장 ph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