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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년 전북 전주 출생
<> 63년 경기고, 68년 서울대 경영학과
<> 68년 한국은행 입행
<> 70년 행정고시 8회
<> 72년 청와대 경제비서실
<> 79년 재무부 과장
<> 89년 관세청 기획관리관
<> 94년 재정경제원 상임심판관
<> 97년 ASEM사업추진본부장
<> 98년 한국수출입은행장
<> 부인 박성숙 여사와 1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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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기 수출입은행장은 사무실 책상위에 신문기사 몇개를 큼직하게 복사해
붙여 놓았다.

"00은행 임원문책"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다.

양행장은 이 기사를 보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민원인이 왔다가도 이 기사를 보면 입을 다문다고 한다.

양 행장은 이처럼 금융계에서는 "이단자"라고 부를 정도로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스타일이다.

수출지원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장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일쑤다.

산업자원부가 주최하는 수출진흥대책회의에서도 소신있는 발언으로 다른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기업은 스스로 생산력을 높여야 하고 정부도 무조건 지원만 하면 된다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양 행장의 주장이다.

그의 "소신"은 대우사태때 빛을 발했다.

관련 부처의 주문이 있었지만 위험성이 있는 대출은 하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막역한 사이인 (주)대우 장병주 사장의 부탁도 뿌리
쳤다는 후문이다.

수출입은행이 그나마 대우 사태라는 태풍을 비켜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연유다.

그는 대우사태가 불거지기 일찍 전부터 은행 총여신의 18%를 차지하는 대우
여신을 보전하는 방안마련에 골몰했다.

대우 점검반도 만들어 신용상태나 자금동향을 체크했다.

지원만 하는 은행이었기에 자료나 경험이 부족했지만 착실하게 준비해 갔다.

차주를 대우그룹에서 해외수입자로 바꾸거나 수출대금을 수출입은행 계좌에
직접 입금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줄였다.

또 수출자금대출에 대해서는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별제권"을 다른
금융기관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결과 3조6천7백4억원의 대우여신중 이번에 채무조정을 해주는 채권은
2천4백77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양 행장은 "대우그룹 사태이후에도 약 30건의 대우관련 수출지원
을 했다"며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돈이 나갔지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양 행장은 재무부 관세청 등에서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했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은 한국은행 조사부였다.

68년 입행동기인 박철 한은 부총재보는 "대학신문 기자를 해서 그런지
제한된 시간에 많은 양의 원고를 쓰는 실력파"라고 치켜 세운다.

재무부관료 시절 이재국장 같은 요직을 두루 거치지 못했지만 탄탄한 실력
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나 엄낙용 재정경제부차관, 김종창 금감위상임위원,
이정재 금융감독원부원장 등이 행시 8회 동기다.

양 행장은 요즘 다른 국책은행장과 마찬가지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수출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정책기관이면서도 일반은행 같은 이익개념을
확고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상반기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20.98%로 국내은행중 최고
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6백64억원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양 행장은 "실적경쟁을 하지 않고 내실을 다져 나가겠다"며 "적격업체의
수출은 1백%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책을 많이 읽는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한때 오디오기기를 모으는게 취미였다.

요즘은 골프(핸디 16)로 건강을 관리한다.

고 박철웅 전 조선대 설립자의 사위로 부인 박성숙 여사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다.

< 김준현 기자 kimj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