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1주일 앞둔 지난 9월17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는 노무현 국민회의 부총재주재로 삼성자동차와 관련된
인사들이 긴급히 모인 적이 있었다.

삼성차 부산공장을 재가동하도록 채권단이 협조해달라는 것이 이날 안건이
었다.

회의 후 채권단에서는 "가동해도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채권단의 판단이다"
며 "왜 신규자금을 지원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추석을 앞두고 정치권이 부산민심을 달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한달이 흐른 지난 주말.

결국 삼성자동차 채권단은 삼성차에 2백억원을 추가로 빌려주기로 결정했다.

이 자금으로 삼성차는 3개월가량 공장을 다시 가동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금지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고 부품을 활용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공장매각
때도 도움이 된다"고.

또 고용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회수도 부산시가 보증을 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삼성차가 자체 분석한 자료를 제시했다.

"자동차 1대당 2백59만원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어 경제성도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채권단도 속으로는 이 말을 믿는 것 같지 않다.

3개월간 한시적으로 공장을 가동할 자금만 주겠다는 방침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빛은행 유한조 이사는 "3개월 이후는 삼성차에서 결정할 사안"라고
말했다.

또 "추가 지원은 채권보전방안이 확실히 마련돼야만 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측이 주장한 경제성에 대해 채권단 스스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채권단은 자금지원을 결의했다.

왜 그랬을까.

금융계에서는 정치권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채권단의 한계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채권단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돈을 빌려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5일에는 김영삼 전대통령이, 16일엔 김대중 대통령이 잇따라
부산을 방문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전략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부산경제활성화에 대해 대책을 내놓았다.

삼성차 부산공장을 재가동하겠다는 것도 물론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를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경제문제가 정치논리에 이끌려 뒤죽박죽되는 과거 구태가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총선과 신당창당등 복잡한 정치일정을 앞둔 시점에서 말이다.

<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