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 ]

<> 39년 3월 경남 김해 출생
<>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 74-81년 동양통신 경제부장.편집국장,
82년 연합통신 지방국장,
83-94년 쌍용투자증권(현 굿모닝증권) 이사.전무.부사장.사장,
94년 쌍용해상화재보험 대표,
95년 제일투자신탁 대표,
99년 동원증권 대표
<> 부인 심경자씨와 2남 1녀

-----------------------------------------------------------------------

"쇠심줄" "불도저"...

하진오(60) 동원증권 사장에게 증권업계가 붙여준 별명이다.

하 사장은 어떤 외압이 닥쳐도 자신의 경영철학이나 소신에 어긋나는 결정은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 사장 자신도 "주주와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고집하다보니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고 말한다.

쌍용투자증권 사장 재직 시절 "외압"에도 불구하고 삼미특수강의 회사채
지급보증을 연장해 주지 못하겠다고 버틴 일이 그의 쇠심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지난 92년 삼미특수강은 1백억원의 회사채 지급보증을 연장해 달라고
쌍용투자증권에 요청했다.

리서치센터 및 심사부로부터 삼미특수강의 재무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하 사장은 보증연장을 거절했다.

삼미특수강 사장과 "오너"로부터 재심요청이 들어왔다.

또다시 거부하자 당시 재무부장관이 "압력"을 가해 왔다.

쌍용그룹의 오너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하지만 그는 부실회사에 대해 보증해 줄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쌍용증권이 거절한 지급보증은 보증보험사가 대신했으며 결국 보증보험은
1백억원을 대신 물어 주어야 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수익위주의 내실경영뿐".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 지끔까지 9년동안 한결같이 이 철학을 지켜 왔다.

"외형위주의 성장정책은 순간 화려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손실을 몰고 온다"고 그는 강조한다.

일부 대형증권사의 수익증권 판매경쟁이 성장드라이브의 실패를 보여
준다고 그는 역설했다.

지난해 중반이후 일부 대형증권사는 수익증권 유치에 사운을 걸었다.

좀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옆의 증권사보다 수익률을 1%라도 더 올리기
에 혈안이 돼 있었다.

동원증권은 그러나 수익률보다는 안전성에 치중했다.

1년이 지난후 결과는 동원증권의 싱거운 한판승으로 끝났다.

일부 증권사가 대우 무보증채를 고객자산의 10%이상을 떠안고 있으나 동원은
1.6%에 불과하다.

특히 동원투신은 펀드자산의 0.6%로 전 투신사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동원증권과 하 사장의 내실경영은 국내 투자자들보다 외국투자자들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동원증권의 외국인 지분율은 35%로 증권사중 가장 높다.

하 사장은 "고병우 동아건설 회장을 모시면서 이런 경영철학이 몸에 뱄다"
고 털어놓았다.

언론인이었던 그가 쌍용증권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을때 쌍용증권의 최고
경영자가 바로 고 회장이었다.

하 사장은 "지금도 고 회장의 정도경영을 따라가는 정도"라고 겸손해 했다.

하 사장은 동원그룹의 오너인 김재철 회장과도 경영철학이 일치해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밝혔다.

그는 김재철 회장이 지난 3월 동원증권 사장 자리를 부탁했을때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자신을 잘 모르겠지만 자신은 김 회장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다고 덧붙였다.

"90년대초부터 내실경영의 상당부분을 한신증권(현 동원증권)으로부터
벤치마킹했다"

그는 동원증권의 진가가 조만간 발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변해 외형경쟁이 사라진다면 질위주경영, 무차입영업,
탄탄한 수익구조 등이 돋보이는 동원증권이 증권업계 리딩컴퍼니가 될
것이란 얘기다.

"임기중 주가를 다른 증권사의 2배이상 높일 자신이 있다"

하 사장은 자산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소주반병 이상 술은 사절한다.

매일 새벽 1시간동안 등산을 통해 건강관리에도 힘쓴다.

부인인 심경자 세종대 회화과 교수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심 교수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수제자이다.

언론이 출신이면서 경영자로 변신에 성공한 하 사장의 행보에 증권업계가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

< 박준동 기자 jdpow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