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벌개혁의 "끝내기" 수순에 들어갔다.

"8.25 재벌개혁 후속조치 방안"에는 재벌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규제 수단이
총동원됐다.

우선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으로 자금줄을 막았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총수의 경영권에도 제동장치를 마련했다.

출자총액제한과 부당내부거래 차단조치로 계열사간의 연대도 끊었다.

나아가 상속.증여세 강화로 경영권의 세습도 억제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런 구도하에서 재벌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이다.

정부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독립적 기업의 느슨한 연대"로 변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실상의 재벌해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기업 진화론"적 시각에서 "재벌의 자발적 변신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아쉽다"는 비판도 있다.

<> 재벌변신의 필요성 =현재의 재벌체제를 바꿔야 한다는데는 정부뿐
아니라 재계도 동의하고 있다.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구조"로 지목되는 재벌체제는 계열사간의 연대를
특징으로 한다.

소속 계열사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선단식으로 움직인다.

내부거래와 상호출자, 지급보증이 그 매개 수단이다.

과거 산업화 시기에는 이같은 재벌체제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시기가 지나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선단식 경영은
불리한 점이 더 많아지게 됐다.

"내부거래, 즉 인 하우스 소싱은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단지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부품을 사주는 관행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다"(재정경제부 변양호
국제금융과장)는 것이다.

이런 점은 기업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최근 일부 선도기업들이 광고제작을 외부 광고회사에 맡기는 등 아웃 소싱
붐이 일고 있는게 그 증거다.

이에대해 공병호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변화의 "당위성"보다는 "당연성"을
역설한다.

"재벌은 환경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 와중에서 일부는 몰락하고,
일부는 느슨한 그룹체제로 바뀌고, 또다른 일부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전문화된 기업을 변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 8.25 조치의 배경 =이처럼 재계에서도 변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정부가 개혁의 가속페달을 밟는데에는 나름대로 논거가 있다.

"한국 기업뿐 아니라 전세계 기업이 변화중이다. 따라서 승패의 관건은
속도"(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라는 것이다.

즉, 변화의 속도가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시각이다.

정부는 특히 개혁작업이 해를 넘기면 개혁에 대한 저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총선을 앞두고 있어 재벌개혁이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고 있어 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재벌개혁은 그에 수반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 등 근로자의 고통
분담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 자발적 개혁의 유인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이같은 논거에도 불구하고
이번 8.25 조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재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유인책이
결여돼 있다"(전경련 유한수 전무)는 지적이다.

그중에도 순환출자 해소 방안에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안으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는 방안과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돼 왔다.

전자가 "법적 강제"로 해소케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재벌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조치다.

그런데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만 부활하고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는
"좀더 검토한다"며 대책에서 배제했다.

이에대해 식자들은 "지주회사 제도는 시장경제 원칙 아래 경영체제를
민주화할 수 있는 제도"라며 아쉬워 하고 있다.

재벌로 하여금 지주회사를 설립케 하고 사외이사를 통해 지주회사의 경영을
민주화하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제2금융권의 자산운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조치도 "시장의 선택을
강요하는 규제만능적 행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의 재벌개혁이 이념논쟁을 일으키는 것도 이처럼 시장원리에서 벗어난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