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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년 전남 강진 출생
<> 58년 광주제일고 졸업
<> 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64년 한일은행 입행
<> 83년 바레인 지점장
<> 84년 비서실장
<> 88년 국제부장
<> 91년 상근이사, 상무이사
<> 95년 전무이사
<> 98년 한일은행 행장 직무대행
<> 99년 한미은행장
<> 부인 윤근영 여사와 1남2녀, 취미는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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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한미은행장은 비교적 조용하다.

화려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띠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샌가 일을 깔끔히 처리해 남들을 놀라게 한다.

지난 2월 한미은행장으로 취임한 이후 행적을 더듬어 보면 조용히 내실을
추구하는 형임을 알수 있다.

그는 행장 취임이후 매일 1개이상 지점을 방문해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한 경기은행의 거래선을 흡수하기 위해 매주 경기지역 유관기관
을 찾아다니고 있다.

금융계에서 "튀지 않으면서 실속과 저력을 쌓아 나가는 한미은행의 이미지
와 딱 맞아떨어지는 경영인"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협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지만 남들이 생각지 못했던 우체국과의 과감한
업무제휴를 시도, 추진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함께 일해본 금융계 사람들의 평도 거의 한결같다.

"빈틈없는 성격에 선이 굵고 판단력이 뛰어난 금융인"이라는 것이다.

한일은행에 근무할 때 신 행장은 위아래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 왔다.

명쾌하고 예리한 판단력을 갖춰 업무능력 면에서 "은행내 제1인자"였다는
것이 한일은행 직원들의 평가이다.

신 행장은 대학졸업후 곧바로 은행에 들어왔다.

올해로 35년째 금융계에 몸담고 있다.

이중 20여년간을 바레인지점장 홍콩지점장 국제부장 등 외환과 국제금융분야
에서 일해온 국제통이기도 하다.

신 행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직후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는다.

과거 10년이나 20년간 해야할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 같았다는 얘기다.

당시 그는 한일은행 전무와 행장대행을 맡으면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을 추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빛은행장 후보에 올랐지만 한일과 상업출신 배제원칙에 밀렸다.

이제 한미은행의 최고 사령탑 자리에 오른 그는 행장 역할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비전을
세우고 그 전략에 맞게 직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이끌면 된다"는 것이다.

신 행장은 한미은행의 목표를 "수도권 최고의 은행"으로 세웠다.

이에 걸맞게 한미은행은 상반기에 1천5백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경영개선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 이익목표는 2천억원.

주가도 한때 은행권의 중상위수준인 1만8천원에 육박했으나 대우여신 부담
때문에 최근 1만원을 갓 넘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신 행장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

그는 지난해 8월 퇴근길에 집부근 골목에서 불량배들을 꾸짖다 허벅지를
흉기에 찔리는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목발을 짚고 은행에 출근하는 열정을 보였다.

금융구조조정으로 어수선한 은행을 추스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요즘 신 행장은 직원들에게 변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자신도 경영관련 서적을 열독,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격주로 열리는 팀장급 경영전략회의에서 자신이 읽은 외국기업의
혁신사례를 직접 강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취미는 등산.

거의 매주 산에 오른다.

서울 근교보다는 조용한 지방을 찾아가 친구들과 오붓하게 산행을 즐기는
편이다.

등산 말고도 매일 20-30분씩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이다.

은행권에서는 대학 동기인 위성복 조흥은행장과 절친한 사이다.

정치권에서 이영일 국민회의 대변인과 광주제일고 동기이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