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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년 전남 장흥 출생
<> 광주고.서울대학교 상학과 졸업
<> 64년 조흥은행 입행
81년 싱가포르 사무소장
84년 영업3부장
87년 샌프란시스코지점장
91년 영업3부장
92년 심사부장
92년 이사
94년 상무
98년 전무
98년8월~11월 은행장
99년4월 은행장
<> 부인 하순자 여사와 1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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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위성복 행장실에는 집무용 책상이 따로 없다.

여러 사람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 소파만 있을
뿐이다.

"권위적인 느낌이 들어 상무시절부터 집무용 책상을 없앴다"는게 위 행장의
얘기다.

위성복 행장은 조직의 리더로서 "완벽함"를 꿈꾸고 있다.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논다" "피눈물나게 직원들을 몰아붙이지만
일과후에는 소주를 같이 마시고 허물없이 지낸다"고 말하는 그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가장 탁월한 은행장"과 "직원들에게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위 행장은 조흥은행에 들어가 고향인 장흥에서 3년여간 일한 것을 제외하면
32년동안 본점과 해외점포에서 일했다.

지점장을 맡은 경험도 없다.

영업3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부실 해외건설업체들을 정리했다.

수서택지 비리사건, 해외주식발행, 쌍용자동차 빅딜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위기관리능력과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는 이미지를 차근차근 쌓아 왔다.

그는 "은행장 재수생"이다.

첫번째 조흥은행장 시절은 "낙마"로 끝났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내 준 합병이나 외자유치라는 숙제를 풀지 못해 4개월만
에 옷을 벗어야 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극히 드물게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4월 충북은행과 합병을 앞두고서 였다.

"또다시 은행장을 노린다"는 일부의 비판을 물리치고 그 기회를 낚아챘다.

"은행장을 선임하는 위원들과의 면담에서 많은 것을 준비하고 열변을 토해
냈다"(안충영 조흥은행 이사회의장)고 한다.

위 행장은 2000년까지 조흥은행의 경영기반을 확고히 다져 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강원은행과의 합병작업이 "세금착오"라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무기한
연기됐다.

합병이 실패하거나 거액의 부실여신이 발생할 경우 위 행장은 치명상을
입을수 있다.

위 행장은 최근 퇴직금으로 조흥은행주식 1만주를 매입했다.

7천5백원에 샀다고 말한다.

2000년에는 1만5천원까지 오를 것으로 믿고 있다.

일종의 자기최면인 셈이다.

위 행장을 처음 만나면 "강해 보인다"는 인상을 준다.

골프와 등산 야구 등 운동을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일처리는 매우 꼼꼼하다는 평이다.

81년 싱가포르사무소장으로 재직하면서부터 시작한 메모습관을 지금도 갖고
있다.

노트만 어느덧 1백권을 넘어섰다.

해외주식발행 경험을 담은 "로드쇼"라는 책을 펴낼 만큼 기록하기를
좋아한다.

위 행장은 행원들로부터 "의리가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난해 합병실패로 동반퇴진했던 송승효 상무(현 조흥투자신탁운용 사장)와
변병주 상무(현 조흥증권 부사장)를 은행장에 컴백하면서 계열사 임원으로
중용했다.

운명을 함께했던 부하직원을 선택한 그의 결정은 옳고 그름을 떠나 보스
기질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규성 전 재경부장관, 정인직 대림산업 부회장, 사공일 전 장관, 서영택
전 장관, 신동혁 한미은행장 등이 대학동기들이다.

강남쪽에서 사는 동기동창들이 많아 "서울상대 58강남회"를 만들어
어울리곤 한다.

신동혁 행장과는 대학때 같은 방을 쓴 막역한 사이다.

< 현승윤 기자 hyuns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