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 세살의 현대자동차 영업사원 주은철(가명.서울 보광동)씨.

그는 동갑내기 부인과 네살난 딸을 데리고 한달에 한번꼴로 서울 동대문의
패션 쇼핑몰 "밀리오레"에서 주말저녁을 보낸다.

토요일인 지난 5일 오후 11시, 2층 숙녀복 매장에서 주씨 가족과 마주쳤다.

"처음엔 집사람의 성화에 못이겨 나오게 됐는데 막상 와보니 전혀 예상
밖이더군요. 매장 분위기는 백화점에 못지 않으면서 산뜻한 디자인의 옷들을
싼값에 살 수 있어 이제는 제가 먼저 가자고 합니다"

부인 박미경(가명)씨는 "요란한 음악소리와 북적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말 야간 쇼핑을 하다보면 연애때 기분을 느낄 수 있는게 마음에 든다"고
맞장구를 쳤다.

주씨 가족은 이날 8층 식당가에서 딸이 좋아하는 돈가스로 외식을 하고
아동복 코너에서 반바지와 티셔츠를 하나씩 산뒤 밀리오레 브랜드가 찍힌
쇼핑백을 "자랑스럽게" 들고 오후 11시께 집으로 돌아갔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심야 패션 시장을 일궈낸 서울 동대문의 밀리오레
와 두산타워.

휘황찬란한 조명, 귀가 멍멍해지도록 울려퍼지는 댄스 음악, 새벽 1시에도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매장 사이를 지날 수 없는 쇼핑 인파.

그러나 이같은 "불야성"의 동대문 밤 쇼핑 현장은 단순히 10~20대 젊은이들
만의 잔치는 아니다.

아이 손을 잡고 매장 곳곳을 기웃거리는 30대 부부, "도대체 두타,
밀리오레가 뭐길래"라며 버스를 전세내 올라온 지방 단체쇼핑객, 두눈에
호기심이 가득한 외국인 관광객들.

그들 역시 "밤 없는 동대문" 만들기에 톡톡히 한몫 하고 있다.

두산타워 지하 1층에서 만난 한 30대 주부의 쇼핑변을 들어보자.

"남편하고 한판 싸운뒤 하도 화가 나서 뛰쳐 나왔어요. 어딜 갈까 하다가
이곳에 왔는데 머리핀 사기잔 같은 것을 하나씩 사다보니 3만원밖에 안
썼는데 기분이 싹 풀렸어요"

부산에서 온 동생이 졸라대는 바람에 오게 됐다는 주부 김모씨는 두산타워
와 밀리오레 쇼핑백 7개를 들어보이며 "말로만 듣다가 동생덕에 나도 처음
왔는데 물건도 좋고 값도 싸 이것저것 많이 샀다"고 말했다.

"히스테릭" "달라 박스" "D&J" "앙드레 문".

밀리오레와 두산타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 유형이다.

수입품 매장을 제외하곤 한결같이 "싸구려" 브랜드들이다.

따라서 가장 비싼 축에 끼는 남녀 정장 가격이라 해도 1벌에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제품들은 "싼게 비지떡"이란 속담을 무색케 할 정도로 상품성
이 뛰어나다.

점포주이기도 한 디자이너들은 외국에서 보고온 최첨단 패션 의류들을 단
3일만에 시장에 내놓는다.

그들의 눈썰미와 기동력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최대 매력은 무엇보다 재래상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어
놓은 쇼핑환경에 있다.

20~30층에 이르는 현대식 건물에 갱의실, 수선실, 식당가, 수천대의 주차
공간까지 갖춰 놨다.

신용카드 사용 점포도 늘어나고 있고 환불도 가능하다.

백화점에 맞먹는 쇼핑 분위기, 제품력, 가격 경쟁력 등 쇼핑의 "3박자"를
두루 갖춘 셈이다.

두산타워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두산타워나 밀리오레의 브랜드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 전철을 타면 흡사 롯데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남편들이여, 이번 주말 동대문에 나가 "올빼미 쇼핑족"이 돼보자.

큰돈 들이지 않아도 "약발"은 오래간다.

< 윤성민 기자 smy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