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외환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98년 4월.

한 젊은이가 사업계획서를 담은 가방을 든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창업자금을 지원한다고 해 찾아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퇴짜를 맞고,
진행중이던 한국 대기업들과의 투자유치 협상도 IMF(국제통화기금)체제를
이유로 무산된 뒤였다.

PC용 보안소프트웨어 벤처기업 "택공일"의 안태균(29) 사장.

그는 창업을 위해 미국까지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알음 알음 찾아간 실리콘밸리의 한 교포기업인이 선뜻 투자를 약속했다.

"사업아이템도 좋지만 태평양을 건넌 열정이 마음에 든다"는 게 이유였다.

택공일은 그해 9월 창업했다.

11월엔 투자를 약속했던 교포기업인 2명에게 지분 40%를 넘기고 외자를
유치, 외국인 투자법인으로 등록했다.

안 사장의 도전정신은 고려대에 다닐 때부터 창업을 준비해온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택공일은 그가 지난 92년 결성한 과내 동아리 이름.

김영기 김지현 김정훈씨 등 벤처기업 택공일의 창업멤버는 모두 동아리
"택공일" 출신.

기술을 뜻하는 "테크"에서 "택"을, 2001년을 상징하는 "공일"을 따 와서
합성한 동아리 이름이다.

동아리 택공일은 지금도 활동중이다.

여기에 속한 70여명의 후배들은 안 사장이 소프트웨어 용역사업을 할 때
아웃소싱하는 주요 인적자원이다.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않고 트렌드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려고
합니다"

안 사장은 인터넷 유해정보 차단 프로그램 "녹스"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녹스는 자녀가 음란정보 조회시 그 화면을 부모에게 팩스로 전송하거나
전화 호출기 전자메일등으로 알려준다.

삼성전자 PC의 번들용 소프트웨어로 공급되고 있다.

작년말 월3천5백카피씩 구매하기 시작한 삼성은 최근 월1만5천카피로
주문 물량을 크게 늘렸다.

녹스는 미국에도 30만달러어치 수출됐다.

안 사장은 최근 새로운 트렌드를 낳을 또다른 아이템으로 "워크 트레이서
(작업추적자)"를 내놓았다.

기밀문서를 접근 못하게 하는 보안소프트웨어는 왜 한결같이 서버용만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게 개발 배경이다.

워크트레이서는 PC에서 실행한 모든 프로그램의 사용기록을 초 단위까지
나타낸다.

PC 사용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 관리하는 것.

사용금지한 작업 및 기밀문서 조회 등을 차단한다.

군부대와 정보기관 등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워크트레이서는 감시만 하는 게 아니다.

전사적 자원관리도 가능케 한다.

무슨 소프트웨어를 많이 쓰는지, 어떤 정보를 많이 찾는지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직무분석까지 가능하다.

"나만의 인터넷 뉴스속보"를 만들어 주는 뉴스캐스터도 이 회사가 상용화를
추진중인 유망 소프트웨어다.

"업무시간이 따로 없어요. 24시간 풀가동합니다"

안 사장은 6명의 적은 인력이지만 밤낮 없이 연구하는 덕에 차츰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액은 2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작년의 5배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

안 사장은 기술력만 믿고 독불장군식의 경영을 하지는 않는다.

경영엔 문외한이라고 털어놓는 그는 주위의 도움을 받는데도 적극적이다.

택공일이 입주한 서울소프트웨어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경영및 마케팅교육에
빠짐없이 참여한다.

주주 교포기업인이 소개한 한국의 전.현직 경영인들을 자주 찾아가 마케팅
방향 등을 상담한다.

이 중엔 이 회사의 성장성을 보고 엔젤(개인투자자)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도
있다.

안 사장은 "최근 투자를 결정한 엔젤들은 주식가치를 액면가의 10배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작년 외자유치 때 택공일의 주식가치가 액면가의 2배였던 점을 감안하면
반년 사이에 기업가치가 5배로 커진 셈.

"대기업에 기술을 라이센스하는 게 소프트웨어 벤처로서의 목표입니다"

안 사장은 "전세계 OS(운영체계) 업체에 워크트레이서를 제공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대학의 창업동아리 회장에서 유망 벤처기업 대표로 변신한 안 사장이 어떤
내용의 벤처 교과서를 만들어갈지 주목된다.

(02)585-8275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일자 ).